내 나이 스물여덟에는 뭘 했었지? 회사 생활 3년차라 가장 아래에서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했고, 퇴근하면 집에서 책을 읽거나 TV를 보면서 빈둥거렸고, 자동차 할부금을 내고 그 정도였던 것 같다. 회사가 비교적 작은 도시에 있어서 별다른 문화 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사귀는 사람도 없었으니 아주 조용한 삶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삶이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참 편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많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한 살이라도 적었을 때 더 많은 일을 할 것을, 그 많은 기회들을 못 본 척하고 현실에 안주했던 것이다.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2011, 제니퍼 바게트, 할리 코빗, 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북폴리오 펴냄)의 세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았다. 저마다 일에서 성공하려고 바쁘게 일하고, 아만다를 제외하고는 남자 친구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과 사랑에서 열심히 살고 있던 이 스물여덟 동갑내기 아가씨들이 1년이나 되는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토성회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옮긴이의 주석에 따르면 '토성회귀'란 29년 정도에 한 번 토성이 천구를 일주하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스물여덟에서 서른 살이 청년기를 마감하는 중요한 시기일 뿐 아니라, 성년기의 새로운 시작'(26쪽)이라고 할리가 이야기한다.

그 중요한 시기를 제니퍼, 할리, 아만다는 페루로, 브라질로, 다시 미국으로, 케냐로, 인도로, 라오스로, 태국으로, 캄보디아로, 베트남으로, 태국으로, 뉴질랜드와 호주로 여행하며 배운다. 여행이라는 것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서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힘들지만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성장해 나갔다.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고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2007,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솟을북 펴냄)가 떠오를 정도로, 이들의 여행에는 먹는 것, 영적인 것, 열정적인 것이 공존했다.

미국 여행자라고 하면 가진 자들의 우월함 또는 물질적 풍요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은 그런 선입견을 상당 부분 깨고 다른 나라의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년이라는 여행을 택하기 위해 그때까지 이루어 놓았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들의 1년은 이후의 인생을 바꿀 만한 멋진 시간이었다는 것이 부러웠다. <섹스 앤 더 시티>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뉴욕의 'lost girls'의 1년을 통해 여행이 주는 삶의 여유와 활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