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를 앞두고 엄중한 경계하에 있던 일본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승객 240명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 직전에 2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납치범들에게 장악된다. 그들의 요구는 무고한 죄로 체포된 그들의 스승 "이시미네 다카시"를 공항까지 데려 오라는 것. 납치범들의 정체는 자신들이 스승이라 부르는 이시미네를 중심으로 등교거부 아동이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캠프를 진행하던 자원봉사자들로, 그들 역시 이시미네 덕분에 아픈 과거를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날은 역사적인 개기월식이 일어나는 날이며,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한다. 인질이 된 아이의 엄마가 기내의 화장실에서 부자연스러운 상태의 시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아이를 품에 안고 기내의 다른 승객들을 감시해야 하는 납치범들은 승객중 자마미섬의 기념품 T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사건의 진상구명을 지시한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가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당한 것인가?

그녀는 일찌기 자신의 여동생을 이시미네의 캠프에 참가시켰다가, 그 후 어찌된 이유인지 캠프에 불신감을 갖게 되어 회복된 여동생을 다시 데리고 돌아가 자살로까지 이어지게 만든 장본인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는 피해자 이외에도 또 한명의 중요한 캠프 관련자가 함께 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캠프와 관련된 다수의 인물들이 한 비행기 안에 모이게 된 이 상황은 정말로 모두 우연일까? 졸지에 탐정 역할을 맡게된 청년 "자마미군"의 추리와 납치범들의 계획이 동시에 진행된다. 여성은 타살인가 자살인가?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납치범들의 계획은?

하이잭이라는 모험 소설적인 요소와 불가능 상황에서의 죽음이라고 하는 본격 미스터리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데에 성공한 작품. 이 긴박한 상황하에서 행해지는 추리가 매우 재미있다. 외부인에 가까운 자마미군에게 있어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변화해 나가는 추리. 서투른 추리 대결보다는 이쪽이 훨씬 즐겁다. 특히, 하이잭 된 비행기안이라는 상황 설정이 현장에의 출입이나 흉기의 반입방법 등에 영향을 주고,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것이 좋았다.

먼저 소개된 작품들을 통해 알게된 이 작가의 성향을 보면, 철저하게 본격추리를 추구한다는 인상이다. <달의 문>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그 트릭이나 설정이 매우 독창적이다. 누구라도 끌리게 되는 특별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이시미네 다카시"와 그에게 감화된 사람들, 그리고 납치범들이 계획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인질극. 스릴러에나 나올 것 같은 대범한 설정이지만, 달의 문에서는 이마저도 철저하게 트릭의 도구로 활용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만들어낸 절묘한 트릭을 교묘하게 결말까지 이끌어가는 것은 대단하다.

단지, 작품의 토대가 되는 캠프의 "스승" 이시미네가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유감. 이시미네의 카리스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띄워주는 것이 오히려 경찰측이라는 점에서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느낌. 그 때문일까, 캠프 관계자의 행동이나 심정에 논리적인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심리적으로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베일에 싸여 있던 이시미네를 깊게 파고 들어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뭔가 수상해져 버린다.

진상이 밝혀져 납치범들의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 순간, 사태는 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돌이켜보면 여기에 대한 복선은 이미 나와있었는데도, 어째서?라는 의문과 함께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결말부분에서의 자마미군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타인의 악의를 견뎌낸다는 건 타인에게 악의를 가질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렇죠?"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강해진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너무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