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대한민국 사회의 하나의 전환점이 된 시기에요. 얼마 전 크게 히트를 친 1987의 영화에서도 그러한 전환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죠. 부정선거과 김주열 군 사망 등의 계기로 이승만 정권을 끝장 낸 4.19 혁명이 학생들과 일반 민중들로 대변되는 사회 밑바닥 층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1987년에서는 기득권이라고 할 담당검사가 당시 막강했던 대공수사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사망한 박종철 군의 사망원인을 밝혀내요.

 

즉 4.19에서 키워진 젊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던 젊은이들이 이제 기득권이 되어 정권의 일원이 되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무법적이고 순종적으로 정권에 순응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정권에 기생하거나 저항하거나 또는 기생하면서도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는 소극적 저항자들 특히 마지막 소극적 저항자들이 대거 늘면서 세상이 바뀌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그러한 1980년대를 살았던 문인들의 모습을 문학평론가이자 문학기자인 저자가 담은 1980년대 문단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책의 부제가 ‘한수산 필화사건에서 기형도 시인의 죽음까지’인 것처럼 한수산 필화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해요. 소설가 한수산이 1981년 5월까지 중앙일보에 1년 동안 연재 중이던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 속에 군데군데 등장하는 군인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묘사가 대통령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제5공화국의 최고위층을 모독하는 동시에 군부 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한수산과 동료인 시인 박정만 그리고 당시 중앙일보 문화부장이였던 이 책의 저자 정규웅 등이 당시 노태우가 사령관이던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사건이에요. 이후 한수산은 이후 일본으로 떠나 수년 간 머물렀고 박정만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사망하는 등 관련자들이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또 시집 한권 출간하지 못한 상태에서 29세의 나이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요절한 기형도와 저자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기자와 데스크로 같이 일했었는데 죽기 몇 달 전 신문사 내부 문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된 기형도가 한가한 시간이면 저자를 찾아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가곤 했다고 해요. 이러한 문인들 외에도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서정주나 신진 여류 작가였던 강유일처럼 군사정권에 적극적으로 부화뇌동했던 문인들도 많았다고 해요.

 

저자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서 또 작가들의 친구로서 1980년대 문단의 굵직한 사건들의 현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또 기록을 해왔어요. 이 책은 그러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쓰인 총 50편의 짧은 글의 모음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편이 실린 한수산과 2편인 기형도를 빼면 대체로 한 명씩 다루고 있어요. 당시 문학계의 산 증인이었던 저자의 글들은 우리 문학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 우리에게 큰 교훈과 감동 그리고 아쉬움을 안겨주는 이야기로 가득해요. 각각 대 여섯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은 글의 모음이라 정말 순식간에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어요.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 한국 현대사의 일단을 알고 싶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