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자연주의 소설이 아니다. 자연주의 문학은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제시한 것이다. 졸라의 자연주의가 일본으로 들어와 1인칭 사소설(私小說)로 변형됐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일본 자연주의를 받아들인 1인칭 사소설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중·고교에선 여전히 염상섭의 초기작을 자연주의라고 가르친다."

강인숙(82) 영인문학관장이 연구서 '불·일·한 3국의 자연주의 비교연구'(전 2권·솔과학)를 내면서 문학 교육 바로잡기를 주장했다. 강 관장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부인으로, 건국대 국문과 교수를 지내며 문학비평가로 활동해왔다. 이 연구서는 유럽과 일본 문학을 익힌 김동인과 염상섭을 거쳐 한국 소설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 근대 지성사(知性史)로도 읽힌다.

에밀 졸라는 "소설가는 관찰자이며 실험자"라고 주장했다. 그의 자연주의는 엄밀하게 말해서 의학과 생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은 자연과학자가 실험 대상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프랑스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졸라는 생활 환경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자연과학자의 시점으로 하층민의 생활 공간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강 관장은 "일본 문단은 졸라의 자연주의에서 '자연'을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졸라가 지향한 '과학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일본 작가들은 졸라의 자연주의에서 사실적 기법만 받아들여 작가의 사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일본식 자연주의를 수립했다"고 풀이했다. 졸라의 자연주의가 당대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려던 것과는 달리 일본 자연주의는 개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문학으로 축소된 셈이다.

강 관장은 "고등학교 때 우리는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배웠지만, 대학의 불문학 강의실에서 배운 프랑스의 자연주의와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부합되는 점이 거의 없었다"라며 "아직도 우리 청소년들이 염상섭 소설을 자연주의라고 배우는 현실을 시정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연구를 계속해왔다"고 밝혔다. 강 관장은 염상섭은 "일본 자연주의 영향에서 벗어나 점차 한국 사실주의 소설의 기틀을 세웠다"며 높이 평가했다. 강 관장은 "염상섭은 김동인과 함께 '근대적 자아의 확립, 객관적 묘사체의 정착, 제재의 현실화, 언문일치 문장의 확립'에 기여했다"며 "염상섭은 자연주의가 유미주의와 개인주의가 아닌 사실주의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삼대'처럼 식민지 현실을 담은 장편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