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완성하는… 두 '천재' 디자이너

여기에 '천재'로 불리는 두 사람이 있다.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행'을 완성하는 디자이너 피에르 아르디, 다른 이는 '스토리 있는 공간 여행'을 내세운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다.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은 아르디는 여행을 통해 상상하고, 스케치로 옮기면서 또다시 영감을 받는다 말한다. 미국 타임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 100에 꼽힌 아욘은 테마를 설정해 스토리를 전하면서 공간에 창의적으로 접근한다. 최근 만난 둘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디자인의 원천부터 상당히 많은 부분이 겹쳤다. '인생 여행'을 어떤 식으로 완성해내고 있는지를 전한다.

피에르 아르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조형미술과 무용을 전공했다. 우연한 스케치가 잡지에 실리면서 디자이너로 주목받는다. 에르메스 슈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발렌시아가와 12년간 협업했고 자신의 브랜드도 냈다.

어린 시절 디자이너라는 건 이상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재단사는 알았지만 디자이너가 어떤 직업을 말하는지 감이 없었다. 새로운 분야였으니. 솔직히 말하면 디자이너가 됐다기보다는 선택당했다. 하하. 지금은 모든 걸 디자인으로 구현할 수 있으니 가장 축복받은 이 중 하나라 생각한다.

왜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상상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말을 싫어하는데 말을 상징으로 하는 에르메스와 협업한 게 독특하다고? 하하. 알레르기가 있어 말에 가까이 가는 걸 못할 뿐이다. 미학적으로는 굉장히 아름답다 생각한다. 오히려 다가가지 못하니까 상상 속에서 이미지를 실현한다.

예를 들면 저 신발을 보자. 1970년대 파리에서 디스코텍을 다니던 꽃 같은 여성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머릿속 그녀는 이 신발을 신고 춤을 춘다. 이브 생로랑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헬무트 뉴턴의 사진에 포착된다. 관능적이면서도 사뿐사뿐 도시를 누비는 여자. 그렇게 스토리를 만들어가다 보면 작품도 어느덧 완성돼 간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법이라….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도시를 좋아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 롤스로이스도 몰고 싶다. 전혀 다른 예술가들과 모여 작업도 하고 싶고…. 그러고 보니 모두 가능한 일이군! 일 자체를 즐겨야 한다. 어려운 일이라고? 물론 6개월마다 새로운 컬렉션이 나오고, 매번 이전보다 나은 작품을 요구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간 건 생각 안 하려 한다. 머릿속을 비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되려 한다. 아이가 되면 뭘 해도 신기하고 즐겁다. 인생이 심각하지 않다. 어린이같이 노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하면 일하는 것도 일로 안 느껴진다. 물론 무용을 하면서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고, 어떻게 사람을 극한에 둘 것인가 노력해본 것도 사실이다. 좌절하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주입한다. 난 아이라고. 인생은 그러한 순수함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비즈니스를 생각하면 약간 머리가 복잡해지긴 하지만. 하하.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숫자를 재빨리 지워버린다. 신기한 건 숫자를 버릴수록 숫자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 디자인을 위해 데생을 할 때다. 무언가 시작하는 순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디자인이 현실화되면 무거운 단계가 된다. 이제 진짜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여행을 다닐 때 편하면서도 스타일은 버리지 못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신발은 인간의 걸음을 지탱해주면서 동시에 판타지를 자극해야 한다. 기능과 균형감은 물론 '와우!'하게 해야 한다. 쉬운 방법? 보톡스! 미국인들은 발을 편하게 하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다. 진짜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순 없지 않은가. 해부학을 공부하는 이도 있고, 건축을 파고들기도 한다. (무게가) 무겁지 않아야 한다. 궁금하면 신어봐라. 하하.

요즘 흥미 있는 건 럭셔리의 진화다. 나이키를 보라. 당신은 '대중' 브랜드였던 나이키에서 직접 자기만의 스타일을 디자인해 주문 제작해 '럭셔리'하게 소유할 수 있다. 커스터마이징의 세계가 소비와 소유의 철학을 재설정할 것이다.

내가 천재? 무슨 소리. 천재라면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다. 프라다가 세계 최고의 브랜드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는 능력, 재료를 변형하고, 형태를 완성하는 모든 면에서 혁신적이고 최고다. 못난 것이 그녀 손을 거치면 예술적으로 변한다. 그게 바로 디자인이다.

하이메 아욘

가우디·달리·피카소가 탄생한 스페인 출생.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베네통 그룹의 디자인 파브리카에서 일했다. 2003년 자신의 이름으로 가구, 인테리어 작품을 내면서 설치미술 작가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촉망받는 천재? 하하. 어쩌면 내가 남들이 다 말하는 그런 유명 디자인 학교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주목하는지도 모르겠다. 즐겁지 않으면 절대 일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브리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했지만 당시는 매니저이자 관리자 역할이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낮에는 묵직하게 미팅하는 100% 직장인 모습이었다 밤만 되면 도자기를 만지고 스케치를 완성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혼자 좋아서 만들었다.

우연이었다. 파브리카 디자인 센터에서 '관리자'로서 전시 공간을 얻으려 런던 바닥을 뒤질 때였다. 굉장히 좋은 갤러리를 발견했고, 오너와 친해졌다. 어느 날 그를 우리 집에 초청했는데 내가 만들어놓는 '것들'을 보더니 "어디서 샀냐?"며 나를 붙잡았다. "내가 만들었다" 했더니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결국 그 갤러리는 나의 '것들'로 전시를 하게 됐다. '작품'이라는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으며. 회사도 그만뒀다.

상상하라. 그리고 테마를 잡아라. 내 작품은 어찌 보면 즐겁지만 독특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의심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목욕용품을 제작하는데 어느 날 서커스가 떠올랐다. 둥글고 네모지고, 모든 형태로 서커스는 변화한다. 토끼도 있고 어릿광대도 있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양치컵이 춤을 추고 수건걸이가 목마를 탄다. 재밌지 않은가?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폴트로나 쇼타임 의자를 만들 때도 그랬다. 뮤지컬이 떠올랐다. 아내와 함께 뮤지컬 공연장에 와 있다는 느낌을 구현했고, 그 해석은 통했다. 테마가 없으면 디자인은 없다.

이게 우리 세대의 변화라 생각한다. 내가 디자인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면 아마 이것 때문 아닐까. 그전 세대만 하더라도 디자인이란 편안하고 형태적인 구조미가 있어야 했다. 건축적인 효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없었다. 스토리가 존재한 건 미술 작품에서나 그랬다. 그걸 디자인에서도 구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업계와 일하면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덴마크 가구 디자인 그룹 프리츠 한센과 일하는데, 처음엔 덴마크 역사부터 디자인 스타일까지 공부하다 보니 쉽진 않았다. 하지만 배움이란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이제 그 작품이 한국의 크리에이티브랩과의 독점 파트너십을 통해 선보이게 됐다. 짜릿하다!

이런 작품을 위해선 굉장한 학습이 필요하고 모든 걸 꿰뚫어야 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반대다. 한마디로 무지가 혁신을 만든다. 아이들을 봐라. 그들 머릿속에서 안 되는 건 없다. 생각의 처녀(virgin)이다. 창의는 귀담아듣는 것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백지상태에서 상대가 원하는 걸 듣다 보면 뭐가 문제인지 '펑' 하고 알게 된다.

최근 최첨단 IT 제품과 협업하면서 생각한 게 있다. 테크놀로지가 장인을 대체하게 될까? 아니라고 본다. 나이키를 봐라.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 돈이 럭셔리가 아니고, 개인화되는 것이 진짜 럭셔리다. 몇 년 뒤 럭셔리는 최고의 스마트폰, 스마트 자동차를 갖는 게 아니라 와이파이가 안 되고, IT에서 벗어나고(안티-테크놀로지) 손으로 느끼고 만지고 경험해보는 게 차지할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감정도 읽는다. 사람들은 유혹받지만 점차 염증을 느낀다. 이제 아이템이 아닌 사람을, 관계를 생각하는 시기다. 테크놀로지는 이제 걱정할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