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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에게 똑같이 정의를 집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설령 정부의 이익에 반할지라도 시민의 편에서 신속히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입니다(p.288)." 에이브러햄 링컨의 1861년 일반교서의 일부분으로 이 책은 끝난다.

보통 판사는 여러 청탁전화를 받아도, 약속이 청탁자리인 줄 모르고 나갔어도 그 사람이 쓴 판결문은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원 주요자리에 있는 판사들이 스스로 약자들이 죽기를 기다렸다는 상황, 그러면서 권력자들의 사안에 대해서는 경우의 수까지 분석했다는 양극단의 상황을 일반 국민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를 보며 지난 9년동안 법원, 검사에서 부장급 이상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성향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검은색 부분의 사람들이 승진이 더디거나 9년동안 법복을 벗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을 믿어도 될 것인가? 동시에, 청문회 장소에 핏기 하나 없이 앉아있던 사람이 지방대 법대가 아니었다면, 여자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질문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포토라인에 섰던 판사들 같았다면...이런 질문도 하게 된다.

이 책 저자는 정리를 정말 잘 하는 사람같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개진한 다른 법관들에 대해서, 그 사람이 옛날 사람이든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든 논리의 과정과 해석의 범위와 정의에 관해서 이해하고 판단한다. 미국의 대통령 수보다 훨씬 적은 미국 연방대법원장 17명에 대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12명과 가까이서 본 프레스 빈슨, 얼 워런, 워런 버거, 윌리엄 렌퀴스트, 존 로버츠 주니어 5명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동급 서열 2위인 연방대법원 최고참 선임대법관으로 설명한다.

법관을 설명하는데, 그 사람의 성향은 전제되고 그 사람이 사건을 보는 시각, 사건에 대한 논증을 펴는 과정, 법관들과 논의하고 생각을 자신의 시각에서 정리하는 문장들이 그 법관의 외양을 이룬다. 그래서, 170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를 이루는 문화, 경제, 인종, 사회제도에 관해서 역사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객관적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책은 처음부터 지금 한국인이 느끼기에 저 멀리 있는 개념을 풀어놓는다. 그 옛날에 미국에서 그랬다는 것이 같은 지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1789년부터 1795년까지 초대 연방대법원장으로 재직한 존 제이는 <연방주의자 논집>을 공동으로 집필했다...(중략)...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의 원칙상 대법원이 행정부에 의견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행정부에 권고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헌법 제3조에 따라 사법부에 부여된 '사건 또는 분쟁'을 판단할 권한을 초과하는 행위라는 그의 주장은 이후로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p.22)."

"나에게는 그로피 대 네슬리 사건이 다른 공무원 업무와 판사 업무의 결정적 차이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사건으로 남았다. 민주주의에서 정책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된다. 그래서 입법부와 행정부의 일은 대중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소송에 임하는 판사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인기에 초연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중략)...연방판사들이 하루하루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로 독립성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p.150-151)." 자부심...이런 단어가 대한민국 법원과 얼마나 어울리는 단어일까?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대법원장 일부 혹은 대법관이 사안에 따라 정부 인사 혹은 정책에 유리한 것 같은 문장들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재직기간 중 그 사람은 변하지 않으나 새로 들어오는 법관의 법에 대한 해석범위로 인해 사건에 대한 판결구성이 변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법관 한 명이 만나는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많다. 법관 한 명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까지, 사건의 성격과 해석을 위해 그 개념부터 당사자들에 관한 입장의 배경과 그러한 이유에 도달하기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대학 교수와 재판연구관들의 시각과 역할 또한 중요한 듯 보인다.

"세상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니아 게티즈버그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이 책 처음에 이 문장이 실렸다는 것을 책을 다 읽고서야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읽고 지나쳤으나,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왜 이 문장을 처음에 두었는지 파악하고 웃게 된다. 이 법관의 웃음 포인트가 이런 것이기에.

링컨의 말과 달리 우리는 게티즈버그 연설의 내용을 안다. 주목하고 기억한다. 아마도, 저자는 수많은 대법관들이 쓴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문장들이 언젠가 사례로 후대에 회자될 것을 알기에 신념과 생각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