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문득 필립 K. 딕의 상상력이 얼마나 흥미롭고 매력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1960년대 말에 쓰여지고 1970년에 하드커버로 출간된 '죽음의 미로'는 매우 흥미로운 세계관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오래 전에 읽었던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세계관은 '조유신', '중재신', '지상을 걷는 자'의 3신위 그리고 '형상 파괴자'로 이루어졌는데, 딕 스스로가 기존 종교를 통해서 재창조한 새로운 신학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3신위가 신의 다양한 현실에서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형상 파괴자는 궁극적으로 무질서, 엔트로피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독특한 신학적 세계관을 바탕을 둔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진 등장인물이 '델맥-O'라는 행성으로 전근을 가게 되면 시작된다. 오직 일방향으로만 이용할 수 있는 운송수단 '노우저'로 외딴 외계행성 '델맥-O'로 오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 행성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떤 일을 해야 되는 지도 모른채 하나 둘 씩 모인다. 모든 것이 낯선 이 행성에서 사람들은 기괴한 생명체와 '건물'을 발견하지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이곳으로 전근 온 이유와 지시사항을 들으려고 한 순간, 통신기기는 말썽을 부리고 이들은 낯설고 외딴 외계행성 '델맥-O'에 고립되고 만다.

문득 필립 K. 딕의 불행한 실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로 무엇이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정신적 결함은 저마다 인간이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안과 착오가 극대화된 형태로 생각한다. 연약한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아봐야 되는 것일까. 황량한 외계행성에서 신의 손길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며, 결국 현실은 영원히 고립되어 궤도를 도는 페르서스9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인생은 딕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재미없게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에 세스 몰리가 중재신을 만났을 때, 나는 딕이 현실의 척박함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