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GO>, 어떻게 읽을까?                      

지금부터 <GO>를 제가 읽어나간 방식으로 이야기해드릴게요 ^^ 이곳저곳에서 많이 다루어졌던 작품이라 아마 새로운 내용은 별로 없겠지만, 혹시 이건 좀 아닌데,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부분들은 저의 주관적인 읽기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T_T

포인트 1, 유쾌한 도전,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 <나는 재일교포 3세대?>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GO>의 주인공 스기하라는 아버지가 재일조선인 그리고 공산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책이 시작되자마자 이 스기하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 속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은 그 어떤 ‘주의’에도 연연하지 않는 자신의 ‘연애’이야기를 하겠다고 유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ism’도 국적도 중요치 않다고 결정타를 날리는 것은 바로 이 대사인데요.

'노 소이 코레아노, 니 소이 하포네소,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 (나는 조선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위의 대사는 노르웨이 국적을 갖겠다고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스기하라에게 아버지가 스페인어로 했던 말이고 스기하라 역시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재일교포라는 말로 인한 정체성의 갈등, 그리고 주의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그것을 떠나기 위해서는 결국 국적이라고 하는 우리를 구속하는 하나의 틀 안에서 벗어나야 하겠죠.그리고 스기하라와 그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국적에 대한 고민을 뜨악한 스페인으로 날려버립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부터 이미 그들의 국적이야기는 너무나 가볍고 우습게 묘사되는데요, 스기하라의 어머니가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아버지는 국적을 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꾸는 절차를 밟습니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미토콘드리아 DNA이야기에요. 미토콘드리아 DNA이야기는 음식점에서 스기하라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인데, 어머니 것만 전해지는 DNA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기의 뿌리였던 오직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뿌리는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다.'라는 점인데요, 그냥 국적도 무슨무슨인이라는 구별도 없이 어느 자유로웠던 시대의 그냥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스기하라의 친구인 정일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포인트 2. 현대인의 차가운 욕심 <무관심>

조금 전에 멋진 이야기를 했던 스기하라의 친구 정일의 죽음이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정일은 스기하라가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일본학교로 옮기기 전에 다녔던 민족학교에서 만난 친구에요. 수재라고 불릴 만큼 머리도 좋고 생각도 바로잡힌 올곧은 친구인데, 독자가 분개할만한 상황에서 일은 벌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아마 다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야기 일거에요, 이 책의 5번째 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여학생을 좋아하던 한 일본남학생이 친구들에게 떠밀러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항상 일본인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왔고 그가 말을 걸자 민감해졌죠. 그리고 그 여학생은 이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듯 여기저기 둘러보았고 그 여학생의 선배였던 정일이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일본인 남학생이 나이프를 잘못 휘둘러 정일이가 큰 상처를 입었고, 조선인여학생이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전철에 올라타고 내립니다. 정일이 구급차에 옮겨질 때도 승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고, 그는 늦은 처치로 숨지고 맙니다.

그런데 과연 이 상황이 일본이었고, 그들이 약자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물론 조선인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무관심도 한몫했겠지만,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 사고를 당해도 다들 자기 일에 바쁜 이기심에 외면하고 맙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건 차별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기심이 빚어낸 단절도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가네시로카즈키의 작품들>

포인트 3. 차별, 그 과정에 대하여

이러한 아픔을 겪은 스기하라는 그의 여자 친구인 사쿠라이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그 둘이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는 때에 그가 고백합니다. “나, 일본사람이 아니야.” 사실 그간 말은 안했지만 그도 속으로 고민했던 것이죠.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자 그가 그토록 무시하려했던 국적이 문제가 되고 맙니다. 그가 애써 자신의 국적을 밝히고 또, 국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쿠라이는 갑자기 그를 피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한국이나 중국 남자”하고는 사귀면 절대로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피가 더럽기 때문’ 이라면서요.

여기서 재일교포 3세대인 스기하라와 현대 일본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사쿠라이와의 사랑을 가로막는 사쿠라이의 아버지의 무서운 국적과 인종에 대한 편견은 어쩌면 그의 엘리트의식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흑인을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고 말하며, 도쿄대 출신의 학생운동까지 했었던 사쿠라이의 아버지가 ‘한국인과 중국인은 피가 더럽다’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으며, 그 편견은 그의 딸에게 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어찌 보면 사회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러한 편견을 갖고 퍼뜨린다면, 그 이후의 세대들 역시 그들의 부모님의 의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차별이란, 그 과정이 어이없지만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포인트 4. 차별, 그 상대적인 이야기

한 번 더 차별과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스기하라가 일본인학교에 가서 만난 일본인 친구 중에 ‘가토’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인물은 아버지가 야쿠자로 주변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면서도 역으로 그를 차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가 스기하라에게 했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나 너 같은 놈은 애초부터 약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구, 우리는 쌍둥이처럼 똑같단 말이야. 우리 같은 놈들이 이 사회를 헤쳐 나가려면 정공법으로는 안 된단 말이야. …”

결국 힘을 가진 야쿠자도 일본 사회 내에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소수의 약자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적을 한국으로 바꾼 뒤 스기하라가 매국노 소리를 들을 때 정일은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한국에서 스기하라가 택시기사에게 차별받고 일본에 와서는 일본인이 아니라고 차별받는 일 등을 살펴보면 과연 국적이 어디인가 만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대적인 차별에 의해 고통 받는 소수의 약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마지막 포인트, 가자! GO!

마지막 결말은 소설의 주된 유쾌한 분위기를 타고 다행히 희망적으로 흘러갑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GO! 인데요. 이것은 스기하라가 좋아하는 사쿠라이가 그에게 화해를 청하며 한 말이자, 소설의 엔딩이에요. 단지 주인공의 연애담이 희망을 안고 끝나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아니라, 본명이 사쿠라이 츠바키, 즉 벚꽃(사쿠라)와 동백꽃(츠바키)라는 가장 일본적인 이름을 가진 현대 일본의 젊은 층을 대표하는 사쿠라이 츠바키가 국적에 대해 고민하고 구속에 도전하며 친구를 잃는 슬픔까지 겪으며 성장하는 재일교포 3세대를 대표하는 스기하라에게 먼저 손 내밀며 가자! 라고 외치는 것은 서로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의 시작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있는 한국인의 국적이란 한국국적, 조선국적, 일본으로의 귀화 세 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보신 독자 분들이라면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가네시로카즈키의 코리언재패니즈(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일본이름을 쓰고, 한국 핏줄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활동하는 모습. 어쩌면 소설 <GO>는 그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장기를 그린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금 지루하게 이야기 한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 실제로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실거에요! 어떤 책을 읽어도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느끼기 어려운 요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고 저처럼 유쾌한 기분이 되어보시는 건 어떠세요:D

★ 가네시로 카즈키, 플라이 대디 플라이, GO, 재일동포, 재일동포 작가, 현월,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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