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년 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사를 배웠다.

하지만 한국사하면 떠오르는 것은 깜지와 암기라는 두 단어뿐이다. 깜지도 암기를 위한 도구였으므로 엄밀히 말해 내게 있어 한국사란 암기다. 허나, 한창 두뇌회전이 빠른 시기에 6년 동안이나 암기해 왔건만 정작 한국사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내 잘못일까? 아니면 학교의 잘못일까?

 

공부에 눈을 뜬 후로 늘 ‘역사’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어느 분야의 지식을 접하든지 간에 함께 따라오는 것이 ‘역사’였다. ‘역사’란 세상의 모든 것이고 세상의 부분부분을 이루는 지식 또한 ‘역사’의 일부이기에 ‘역사’적 배경이 결여된 공부는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러던 찰나에 한국사 편지를 만났건 다행이다. 풍부한 자료와 상세하고도 지루하지 않은 설명으로 ‘역사’를 ‘암기’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인식 하게 해준 이 책은 한국사 공부에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1권의 시간표는 원시사회로 시작해 신라와 발해로 끝을 맺는다. 구석기, 신석기, 고조선, 부여, 옥저, 동예, 마한, 변한, 진한,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이들의 역사를 움직였던 것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였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먹고 사는 방법에 대한 탐구의 시기다. 다시 말해, ‘HOW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불을 어떻게 사용하고, 도구는 어떻게 만들 것이며, 식량은 어떻게 구할지에 대해 탐구하던 구석기·신석기 인들은 의식주에 관한 기틀을 만들었다.

 

반면에, 고조선부터 발해까지의 역사는 먹고 사는 방법의 효율화·안정화·쾌락화의 시대다. 즉 ‘ESP’(Efficiency, Stabilization, Pleasure)의 시대다. 이미 주어진 의식주의 기틀 위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좀 더 안정적이고, 좀 더 즐겁게 먹고 사는 방법을 탐구했던 과정 속에서 다양한 것들이 생겨났다.

 

우선,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농사와 목축 그리고 종교다.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면서 선조들은 식량 조달에 있어 선사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효율성을 이뤄냈다. 동시에 농사와 목축은 얻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을 예측 가능케 했기에 더 의미 있다. ‘귀족들이 아무 소리 못하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아주 참신하면서도 이전의 것을 제압할 만한 새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불교였다.’(한국사 편지1 인용)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는 통치에 있어서의 효율성을 높여 주었다. 종교의 효율성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역시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안정성에 있어서는 법과 제도를 꼽을 수 있다. 법을 만들어 갈등과 분쟁을 줄였고, 사회가 일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적용시킴으로써 안정화를 꾀했다. 신라의 골품제, 6두품제와 같은 신분제도 역시 사회구성원들의 역할을 규정함으로써 사회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만들어낸 산물이다. 법과 제도 역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쾌락화는 의식주에 ‘문화’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몸을 가리고, 배를 채우고, 잠을 자는 것을 넘어 몸을 치장하고, 입에게 즐거움을 주고, 공간을 통해 여유와 위로를 얻으려는 노력들은 ‘문화’를 탄생케 했다. 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 산해진미의 궁중음식 그리고 지금도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고대의 기와집이나 절간의 모습은 의식주를 넘어 하나의 문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렇듯 ‘역사’란 ‘먹고 사는 문제’ 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좀 더 확장해 ‘먹고 사는 문제’는 인간의 숙명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늘 ‘먹고 사는 문제’와 마주하기 때문에 역사는 늘 반복이라는 명제와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라 말할 수 있겠다. ‘HOW의 시대’, 'ESP의 시대‘를 넘어 앞으로 도래하게 될 ’00시대‘를 예측하는 것도 ’역사‘속에서 가능 할 것 같다. 역사 공부는 부족했던 2%를 채워주고, 다가올 시대에 대한 대비의 힘을 길러 주는 ’사유의 피트니스클럽‘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진행될 역사 공부가 기대되는 이유다.

역사, 한국사, 한국사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