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가 끝난 뒤 그 사람은 그림을 구겨서 테이블 밑으로 버렸다는 것

박재동은 이야기한다. “꽤 오래전 밥을 먹는데 다른 테이블의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사인을 해달란다. 나는 캐리커처를 아주 과장해서 그려줬다. 자리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보고는 똑같다고 박수를 쳤다. 대박이구나. 그러나 나중에 같이 있던 이희재씨 말이, 박수가 끝난 뒤 그 사람은 그림을 구겨서 테이블 밑으로 버렸다는 것.”

나의 재미있게 안주 거리 삼아 하는 말이 앉아서 웃을 때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 같지만, 돌아가 곱씹으면 비수 같이 남을 후비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냥 뱉은 말이 가시처럼. 우스개로 가시 숨긴 듯한 말을 삼가야겠다. 새해에는.

아래 글은 큰 놈이 타이핑했다. 타이핑하면서 글 내용을 읽지 않는단다. 타이핑만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글도 잘 안 읽는단다. 관심 없는 분야는 흥미가 없어서.(2012. 1. 1. 일.)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저 | 한겨레출판

정가 13,000원

출간일 2011년 11월 01일

292쪽 | 450g | 153*224mm

	이가을 선생님 나는 캐리커처를 그릴 때 될 수 있으면 단점은 감추고 장점을 부각해서 그린다. 상처를 주기보다는 그 사람의 삶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캐리커처가 아무리 딴 사람 눈에 재밌게 보여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고 괴롭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꽤 오래전 밥을 먹는데 다른 테이블의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사인을 해달란다. 나는 캐리커처를 아주 과장해서 그려줬다. 자리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보고는 똑같다고 박수를 쳤다. 대박이구나. 그러나 나중에 같이 있던 이희재씨 말이, 박수가 끝난 뒤 그 사람은 그림을 구겨서 테이블 밑으로 버렸다는 것. 충격 받은 나!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그림이 본인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런 그림이 과연 예술일까·······. 그 뒤로 나는 상처가 되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격려하는 쪽으로········. 그래서 내 별명이 박 원장(박재동 성형외과 원장)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이따금 망가진 모습으로 얼굴을 그려도, 그것을 재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가을 선생님은 이 그림을 좋아하셨다. 워낙 바탕이 고우시다보니 최고로 망가뜨린 것이 고작 이 그림이다.(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58쪽)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