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을 통해서 처음 접한 김별아 작가님.

소설에서의 그 부드러움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지라 에세이를 넘겨보면서 부드러움보다는

강인함이 참 많이 느껴져 새로운 매력에 적잖이 놀랐다.

 

늦은 밤에 차에 몸을 싣고 달린 후,

이른 새벽녘에 산행지 들머리에 도착하여 기울어져가는 달빛에 의존하여 산을 오르는

무박산행의 참 묘미를 느껴보지 못한 이라면 이 책에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이른 새벽산행과 무박산행으로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나로써는

책표지의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의 글자에서 오로지 "산행"에 꽂혀 덥썩 집어들었다.

산에서 큰 위로를 받고, 강한 힘을 다시 얻어 내려오므로

난 등산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산을 정복한다는 건 사람의 아주 발칙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산을 정복한다는 "등산"이 아니라 산을 벗삼아 함께 걷는다는 "산행"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나의 숨가쁜 숨소리 하나하나가 음악이 되고

나의 눈길 닿는 곳 하나하나가 멋진 전시관이 되고

나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산속에 흔적을 남겨 길이 만들어지고

위험할 찰나에 내 손에 붙잡혀지는 나무줄기에 고마움이 절로 느껴지는

 

나의 행동, 생각.

이 모든 것이 집중되는 그 순간이 바로 오롯이 걷는 산행의 시간이다.

 

 

Page. 7 에 나와있듯이

" 누군가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구도 산을 대신 타줄 수 없습니다.

  길 위에서는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고,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우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몸을 떨며 걸었습니다.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움츠리고 걸었습니다.

  다만 그뿐이었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정말 욕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도 있고,

이제 그동안 다닐만큼 다녔으니 앞으로는 절대 산을 찾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꽤 많이 머릿속에서 머문다.

 

허나 그 힘든 순간에 살랑~ 부는 실바람에,

그 순간에 날아드는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에,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 찰나에

그 모든 힘든생각들은 바람에, 날갯짓에, 꽃내음에 다 실려가버린다.

이런 묘한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몇날 몇일을 나와 함께 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곳은!!

백두대간의 일부분인 바람재를 지나는 우두령~괘방령코스였다.

 

벌써 두 해전에 나 역시도 그 길을 그대로 걸었더랬다.

눈이 허리까지 차 올라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이 들었지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내게는 참 좋은 시간이었던 곳이었다.

 

읽는 내내 그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 급기야는 사진까지 찾아보았던 곳!!

 

 

백두대간의 웬만한 곳들을 다 가보았지만

이 책에서 처럼 백두대간만 종주를 목표로는 달려보지 못했다.

올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도전해보고 싶다.

 

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풀잎들, 나무들.

그 흙내음과 산내음이 지금도 코끝에 스친다.

 

산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모난 부위를 둥글둥글하게 다듬는 능력을 얻어가는 듯 하다.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1. 산행

2. 독서

인데.. 이 둘을 한꺼번에 묶어서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모든 순간이 행복해졌다.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겐, 산에 대한 동경을.

산행을 즐겨하는 이들에겐, 새로운 목표와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