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의 다섯 번째는 ‘세상을 흘겨보며 한번 웃다’이다. 여기에는 ‘이홍전’, ‘오유란전’, ‘금강산의 신선놀음’, ‘환관의 아내’, ‘호질’, ‘양반전’, ‘요로원야화기’ 와 같은 7편의 웃음을 주는 소설이 담겨 있다. 이 웃음은 세상을 비꼬는 풍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 당시 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작품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소설은 바로 열화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과 ‘양반전’이다. 마치 안동 하회탈을 쓰고 양반을 은근하게 비꼬며 양반의 실속 없는 생활과 외식을 풍자하는 듯 한 웃음을 주는 소설이다.

호질은 호랑이의 꾸짖음이라는 뜻인데 위선적인 선비를 호랑이를 화자로 등장시켜서 비판하고 있다. 호랑이는 인간 세상에서 자행되는 부조리와 사회문제들, 예를 들어, 포승이며 도끼며 톱과 같은 형구를 써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일과 돈을 형이라고 부르고 장군의 지위를 얻기 위해 아내를 죽이는 것, 그리고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수에 비해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수가 더 많다는 것처럼 남에게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지닌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면을 고발함으로 인간이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인지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이끌어내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호랑이가 인간보다 오히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살아간다고 변론하는 대목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자연법칙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양반전은 가난해서 군으로부터 곡식을 빌리다보니 몇 해가 지나자 1천섬이나 되는 바람에 관아에 하옥된 어느 양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마을에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는 가난해서 빌린 곡식을 못 갚고 있는 양반을 대신해 곡식을 갚아주고 자신이 양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난한 양반도 자신의 양반 신분을 팔고자 마음먹게 된다. 그래서 관아에 찾아가 그러한 거래를 증서로 완성하고자 한 그 부자는 양반이 지켜야할 행실을 듣고 기겁을 한다.

양반이 지켜야 할 행실에 대해서 증서로 만들어 공표를 하고 있는데 몇 가지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양반은 비천한 일은 일절 하지 않고...언제나 새벽 4시경에는 일어나 유황에 불을 붙여 등잔불을 켜고 앉아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굶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디며 가난하다는 소리는 입 밖에 꺼내지 말아야 한다....손을 씻을 때는 주먹으로 마찰하지 말고, 양치질은 깨끗이 해서 입 냄새가 없어야 한다. 소리를 길게 뽑아 노비를 부르고, 걸음은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맨상투로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 밥 먹을 때 국을 먼저 떠먹어서는 안 되고, 마실 때 후루룩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증서에 담긴 양반의 행실을 듣고 기겁을 하는 부자의 반응은 이 작품의 묘미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사회의 양반 제도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처럼 담겨있는 7편의 작품들은 웃음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들의 삶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아래에서 억압받은 평민의 삶과 양반 제도라는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엿볼 수가 있어서 씁쓸한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를 비판하는데 있어서 웃음이라는 도구와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 당시의 작가들의 끼가 느껴지는 좋은 한국의 고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