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이란 -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庶子(서자)가 있고, 노비를 비롯한 천민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孽子(얼자)가 있다. 이들을 아울러 庶孼(서얼)이라고 부른다.

 

  ‘서얼’, 그들은 시대를 막론하여 사회적, 개인적 위치가 애매하다. 그들은 사회의 규범과 질서 밖에 있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정당한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불구의 존재다. 특히 유교이념을 공고히 지켜나가고자 한 조선 사회에서 그들은 ‘불행, 불온’의 씨앗으로 비난받거나 혹은 암묵적으로 무시되었다. 오늘날 그들의 존재는 잊혔고 역사에서 그들의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도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졌을 테고, 사회에 기여한 바들이 있을 테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 편이 아니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이 책 “서얼-조선 서얼의 꿈과 좌절, 성공과 실패” 는 역사가 외면한 ‘서얼’들의 삶을 되살리고자 했다. 조선시대 어떤 형태로든 족적을 남긴 10여人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았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익히 들어보았을 법한 이들이 있다. 조선 세조부터 5명의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화려한 인생을 구가했지만 ‘간신배’의 전형으로 알려진 ‘유자광’, 첩의 신분으로 조선 정치를 뒤흔든 ‘정난정’, 조선 중기 문명을 떨친 ‘송익필’,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친구들로 알려진 ‘이덕무’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시 사회를 시끄럽게 달군(요샛말로 ‘뜨거운 감자’ ) 몇몇 인물들이 담겨있다.

 

  꿈에서라도 사회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성공’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그런 ‘떳떳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을 조선의 서얼, 오늘날이라고 뭐 태생부터 부당함 속에 묻혀 허우적대고 울분을 토해야만 하는 이들이 없을 쏘냐 싶다. 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동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삶을 오늘 우리가 다시 돌아보는 ‘까닭과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을 고민해 보았는가. 그 ‘고민’의 흔적을 책 속에서 찾기 힘들었다. 그들의 삶이 오늘 재조명 되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과 오늘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를 맺을 수 있을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의미가 매겨지는 것이 아닐까

 

  서얼의 한계를 뛰어넘어 출세가도를 달린 유자광, 정난정의 이야기, 강변칠우와 같은 좀도둑들이 역모의 주역으로 포장되었을 때의 세간은 무척이나 떠들썩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좌절과 절망을 증오로 바꾸어 세상에 보복하려는 이들은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었고’ 이들은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온세력으로 찍혀 비난 속에 스러져 갔으리라. 저자가 사용한 ‘조선 서얼의 꿈과 좌절, 성공과 실패’라는 제목에서 좌절과 실패라는 말은 충분히 알겠거니와 그렇다면 서얼의 ‘꿈과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과 가치, 조선시대 전체를 흐르는 그들의 ‘변혁에의 열망과 도전’ 같은 것들은 찾기 어려웠다.

 

  역사적 기록을 찾기가 어려워서인지 많은 부분이 ‘설화나 떠도는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어 ‘사실’로서 ‘신뢰’가 떨어졌다. 또 최서, 양사언, 유극량과 같은 인물들은 정말로 ‘서얼’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저자가 송익필의 문장에 대한 평을 인용한 것이 있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깔끔하다. 단어 하나하나를 고를 때 정확하게 지칭하는 말을 쓰고, 돌려 말하거나 장식하는 것 없이 단출하게 직절적이고 깔끔하다’ 책을 읽으면서 간절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