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장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공자, 묵자, 한비자와 같은 다른 제자백가 사상가와 달리 어떤 이상향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지엽적인 가치를 하늘의 큰 이치인양 여기며 눈에 보이는 허례허식에 얽매어 작은 일에도 목숨을 걸고 싸움을 일삼는 당대 현실을 개탄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옳다며 서로 다투며 내가 믿는 가치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단죄하는 세상이 그가 살던 전국시대였다. 우리는 역사에서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이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평화와 민주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모는 행위도 같은 거다. 장자는 그런 세태에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참된 진리인가? 제대로 된 이치를 따라 사는 삶인가?

’도道’는 직접 말로 전할 수 없다. 장자는 이야기를 통해 비유로 인간 스스로가 지은 경계를 넘어가라 가르쳤다. “장자”는 북쪽 깊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 곤이 크나큰 새 붕이 되어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스로 한계를 지어내 그 안에서 아귀다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경계를 넘어 무한한 영역에서 사유하라, 그러면 참된 자유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물질적 부에 집착하는 마음, 허례허식에 얽매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를 잊고(좌망坐忘) 하지 않음(무위無爲)으로 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곤이 붕이 되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멀리 날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장자 철학을 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살아가란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다. 통념에 머무는 사람에게 한계를 벗어난 앎은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무지로 보일 것이다. 깨달은 사람이 하는 행동은 평범한 자가 하는 일과 궤가 달라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무지를 알기 위해 알아야 하고 무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장자가 무위를 강조한 이유는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으라 하는 유위(有爲)는 장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장자가 보태어 말할 이유가 없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것도 유위 쪽으로 한참이나 급경사로 기울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장자는 무위를 강조했으리라. 요즘 젊은이들이 ‘노오력’이라고 세태를 비꼬아 말하는 현실이 떠오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작에서 힘과 기량은 일종의 잠재력이라고 했다. 목수가 목공 일을 할 때만 목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쉴 때도 목수다. 아감벤은 할 수 있는 힘과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긴장이 창조력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무위도 실은 유위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참된 의미를 드러낸다. 장자는 이 긴장관계를 이야기 속에 숨겨두고 무위를 강조한 셈이다.

장자의 앎은 시비를 가리는 앎이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일과 같다. 생물학의 역사에서 19세기 생기론(생물을 살아있게 하는 신비한 힘이나 에너지가 있다는 가설)과 기계론(생물은 물질로 환원할 수 있다는 가설)의 대립이 20세기에 와서 유기체론으로 두 가설의 장점을 얻고 단점을 버려 성립된 일이 있다. 장자는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시시비비를 넘어 더 큰 차원에서 기존 견해의 한계를 넘어 사고하는 앎을 추구했다. 논쟁과 시비에 얽매이지 말고 통념을 깨부수어 새로운 차원의 앎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20대에 장자를 읽고 유유자적한 도가적 삶을 부러워했다. 나이가 들고 세파에 물들면서 장자의 가르침을 멀리했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향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다시 장자를 읽으니 내가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장자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상가가 아니었다. 이번에 읽은 장자는 오강남 선생이 ‘내편’만 풀이한 책이다. 외편과 잡편까지 차분히 다시 읽어야겠다.

장자, 오강남, 무위, 질문, 내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