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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치료는 그 효과에 대한 결과나 치료 과정을 명확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는 표현 본능을 발산함으로써 내면에 한 뼘 더 다가갈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다. 이 책은 미술 치료사로서 저자가 경험한 정신 병동에서의 일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어떤 치료가 이루어졌으며 상태가 어떻게 나아졌는지를 임상 실험하듯 적어간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부터 저자 또한 배우고 느꼈던 솔직한 심정들이 적혀있다. 그녀가 치료사라는 명함을 달고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인식보다는 서로의 자리가 ‘환자’와 ‘치료사’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지만, 누구나 서로에게 배울 수 있고 여전히 ‘-되어가는’ 사람으로서 모두를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 병동에 갇힌 사람들이나, 너무 아픈 상처로 인해 삶을 저항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조금은‘특별한’사람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해야 함을 느낀다. ‘우리와 다른 것’이 배척하고 틀린 것이라는 인식이었다면, ‘특별한 시각을 가진 것’은 그들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 자체는 인정해주어야 하는 자세인 것이다.

내가 미술 치료사로서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알기 위해서이다.

말로 잘 설명이 안 되는 마음의 일렁거림을 표현하고, 만나고, 궁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16쪽)

예술은 삶을 은유적으로, 상징을 통해 표현하면서 삶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미술 치료사로 일하게 하는 믿음이다. (206쪽)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더 격한 감정을 표출하고 알 수 없는 말을 되뇌는 정신 병동 환자들을 마주하며 저자 또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나올 때가 있다. 처음엔 치료사라는 사람이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환자들을 대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곳보다 직업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자신의 일을 책임 있게 해나가는 정신 병동의 직원들을 보며 과연 나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반문해보게 된다. 보이지도 않는 환영을 끊임없이 되뇌며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람, 관계자와 환자만 들어올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CIA가 자기를 죽이려 쫓아다닌다는 사람, 나는 외계인인데 UFO을 잃어버려 지금 지구에 머물러 있게 됐다는 사람까지 … 과연 이런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말들을 진지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매일같이 읊어대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무언가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싶은 진지한 질문이 따라다닌다.

감정을 피하려고 하다 보면 감정이 갈 길을 몰라서 둥둥 떠다니다가

이 생각 할 때도 불쑥, 저 생각 할 때도 불쑥 나타난다. 그런데 감정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보아내고, 그 강렬함을 받아내면, 걱정하는 것들이 점점 힘을 잃고 사라진다. (176쪽)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내가 스스로 변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비록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는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창의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290쪽)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있는 정신 병동에서 그나마 미술 치료사로서 저자가 하는 행동은 비교적 자유롭고 재미있는 활동들이 많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기에 비교적 환자들도 잘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미술 치료를 하는 그 잠깐의 시간뿐, 교실 밖을 나서면 시작되는 약물치료와 통제된 생활이 조금은 ‘특별한’사람들에겐 여전히 힘겹고 고통스러운 생활이다. 무엇보다 청소년센터에 있는 아이들은 일반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을 어린 시절부터 겪고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삶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아이들이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치료사와 의사, 간호사, 직원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되찾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깊은 소통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그런 배경과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조차 어려움이 많은 곳이 정신 병동이다. 저자 또한 치료사로서 일하며 간간이 그들로부터 깊은 감동도 받고, 짧지만 강렬한 소통의 순간도 경험하지만 그들이 다시 삶을 저항하고 그에 따른 통제와 규율에 갇힌 삶을 보며 앞이 막막한 나아갈 수 없는 길처럼 느끼게 된다.

“치료의 목적이 자기가 생긴 대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하고 한다.

내가 아닌 누가 되려고 하지도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부정하지도 말고,

생긴 대로 나답게 살게 되는 과정이 치료라는 것이다. (54쪽)

결국 저자는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더 나은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일을 하며 지쳐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만 소모하다 지친 그녀는, 자신을 먼저 세우고 치료해야만 누군가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현재 미술 치료사로서 일하던 미국을 떠나 제주도에 정착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새로 정비하고 그 사이 소중한 인연들도 맺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치유하고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방편으로 자연이라는 재료이자 배경을 새롭게 알게 된다. 그녀가 경험하고, 솎아낸 이야기 속에서 무거운 세계와 답 없는 현실은 여전히 숙제로 남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가 누군가를 살려내지는 못했더라도 소중한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새로운 치료법으로서 자연으로 나간 그녀가 부쩍 성장하고 커졌음을 느끼게 된다. 아픈 누군가를 세상 안에서 치유하려 하기보다는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걷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맞이하는 순간들이 진정한 치유이자 힐링의 순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믿어주는 것만큼 ‘가능케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들이 나를 믿어주어서 여기까지 왔으므로, 사실 ‘내 것’은 없다. (17쪽)

“당신은 할 수 있어. 당신은 할 수 있어”를 외치다가 응원이 필요했던

내 마음에도 그 소리가 와 닿아 결국 우리가 함께 뛰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11쪽)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도 자신이 받는 좋은 영향이 더 많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다른 이를 도왔던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의미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별것 아닌 행동에도 누군가를 도왔던 경험은 결과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누군가를 향해 응원하고 북돋아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행위는 어쩌면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용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상대로부터 받았으면 싶은 호의와 행동을 똑같이 누군가 바라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의도 없이 행하는 행위야말로 우리에게 큰 치유가 되어 마음자리를 넓혀주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받은 호의를 상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똑같은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어떤 욕심도 없이 똑같이 베풀어준다면 그것만 한 보답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히 남을 위한다는, 쉽게 고갈될 수 있는 동정심이 아니라 쓰고 써도 넘치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자비심일 수도 있고 인간애일 수도 있고 미적인 표현에 관한 신념일 수도 있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확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것이나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싸구려 동정심이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흐르는 물처럼 쓰고 또 써도 새로운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더 큰 물을 만나는 경험을 할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더 크고 넓게 만들어줄 것이다. (272쪽)

혼자 오롯이 행복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혼자 내 길을 알아서 가는 사람이, 숨이 막힐 때 내 호흡만으로

수면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