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상처받는 것만큼이나 상처를 주는 것도 피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상처를 받을 때면 한 무리의 고슴도치 떼를 떠올려 본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기도 싫어서 서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고슴도치 떼. 그러다가 재수가 없어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는 고슴도치 한 놈이 다른 놈 쪽으로 넘어진다. 그렇게 해서 찔린 ‘다른 놈’이 바로 '나'다. 기우뚱한 놈은 스스로 중심을 잃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놈이 밀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다른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린 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상처 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려고 버티며 살아가는 같은 고슴도치일 뿐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날 찌른 저 놈도 그렇게 균형을 잃을만한 무슨 문제가 있었겠지, 그건 그 놈 탓이지 내 탓은 아닌 거지, 하고 말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를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고슴도치 떼를 상기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즉, 상처를 주는 것은 '타인'이요, 거기에 대처해야 하는 피해자는 '나'라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동질감을 갖게 하고, 그 가운데 서로의 입장을 균형있게 살펴보게 하려는 의도가 매우 믿음직스러웠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를 갖는 것은 나만이 피해자이고, 나만이 상처받는 사람이라고 좌절하거나 억울해하는 마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심리 전반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그림1>

 

 

 

'오직 나'만이 아니라 '모두 나'처럼 고슴도치 떼에 속해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균형감을 확보하면 이를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관한 저자의 조언이 더 크게 들려온다. 내 상처에만 집착해 그에 쏙 들어맞는 대처법을 찾아보느라 조급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먼저 저자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닫힌 마음의 문의 손잡이를 여는 것도 역시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엉뚱한 곳에 '나 자신'을 내세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내가 내 손으로 상처 입힌 사람에게 상처를 되돌려주고, 그것이 잘 안되면 그 분노를 제 3자에게 뿜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나 자신을 지키느라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올바르게 앞세워진 '나 자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그것을 되찾는데 필요한 것이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내가 약하건, 능력 없건, 예쁘지 않건, 나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사랑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상처에 대처하는 법을 상세히 알기 전에 먼저 눈 여겨 보아야 할 한 단어, '자존감'. 저자가 들려주는 자존감의 작동원리를 듣고 나면 저 사진(<그림1>) 속의 가시덤불 같은 세상에서 홀로 여행을 한다 해도 무사히 건널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다가온다.

 

상처에 대처하고 그로부터 회복하는 방법은 많은 부분에서 현명한 대인관계와 관련이 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알고, 말하지 않은 것을 나의 임의대로 넘겨짚지 않으며, 서로 대화하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그리고 우습게도) 우리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상대방이 피로할 것 같아 주말에 혼자 쉴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상대방은 자신이 힘들 때 그냥 홀로 뒀다고,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처받고 만다. 이런 경우는 악감정을 가지고 상처를 준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상처거리를 찾아 제 마음을 찢어놓는 경우이다. 이렇게 어이없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남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인관계는 물론 지나간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 보는데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상처의 현장뿐만 아니라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묵은 상처들, 즉 상처의 근원지가 될만한 사건들도 돌아보게 한다. 어릴 적 받았던 상처 때문에 그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거나 화를 내고, 이를 통해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 현재 눈앞의 상대방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경우이다. 또한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묵혀두었다가 자꾸만 되살아나는 '좀비 상처'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언급해 준다. 뿐만 아니라 버려두면 영영 치유할 수 없는 상처, 그냥 버려두어야 하는 상처, 상처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 등 좀 더 성숙한 판단이 필요한 상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상처란 그저 (내게) 악감정을 가진 타인이 던진 마음의 병이라고 여겼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종류도 다양하고 깊이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상처 중에서 자존감으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많고, '나의 잘못'과 '남의 잘못'을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으로 해결되는 것도 있으며, 차분한 마음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림2,3>

 

 

상처에 관한 저자의 조언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유용한 것은 '분노'와 '복수'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일단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어떻게 맞받아 쳐 줄까, 즉 어떻게 복수할 것 인가일 것이다. 때론 이런 복수를 위한 전략(주로 말로 받아 치는)을 가르쳐주거나 사전에 방지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도 있지만 여기서는 '용서'를 크게 강조한다. 그런데 분노와 복수를 앞에 두고 용서를 말하면 참 맥이 빠진다. 분노는 결국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며 용서가 최선이라고 평소에 알고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다 소용 없음을 대부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수하려는 심리와 그것의 허무함을 이해하게 된다면 조금은 더 '용서'의 가치에 무게를 실어줄 마음이 생긴다.

 

분노와 복수의 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나면 분을 삭이느라 홀로 방구석에 처박혀 우울한 나날을 보낼 일도(<그림2>), 여우와 두루미처럼 상대방이 먹기 힘든 그릇을 찾느라 소모전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그림3>).

 

그래도 여전히 용서가 힘들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내게 상처를 입히는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의도로 내게 상처를 입혔는지 상대방을 헤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남에게 자꾸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으로 가득찬 사람이다 라는 사실만 이해하면 된다. 솔직히 말해 좀 우습지 않은가! 쉽게 상처 입거나 받은 상처로 연연하는 사람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고, 누군가를 향해 상처 입히는 괴팍한 사람도 똑같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 모두 똑같이 자신의 가시와 타인의 가시 사이에서 고민하는 고슴도치 떼의 일부일 뿐이고, 결국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너와 내가 같다는 생각, 너와 내가 모두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용서를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면 용서하고픈 마음이 좀 더 쉽게 생기는 것이다.

 

위의 연구에서 주변에 행복한 사람들을 두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할 확률이 20% 이상이나 많아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 두고 있을 경우 내가 불행해 질 확률은 40% 이상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질 확률도 바로 저렇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책이 말미에 적힌 이 구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처의 문제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그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의 문제인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말 그대로 타인의 상처를 방어하는데서 그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을 끌어 안고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퍼뜨리는 소중한 존재로서 살아갈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은 좌절하고 상처입기에 딱 좋은 시대이다. 경제적 불안, 교육열과 스펙의 과중함,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누군가 직접적으로 독한 말을 내 면전에 뱉지 않아도 상처받고 아파할 요소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혹자는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똘똘 뭉쳐 방 구석에서 각종 악성 댓글에 골몰하기도 하고, 혹자는 사랑을 대처할 만한 것을 찾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도슴도치가 가시를 부풀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행복 바이러스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그래서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가시가 아닌 포근하고 흰 털을 입고 살아갈 차례이다. 고슴도치 떼가 아니라 양 떼의 일원으로 변할 수 있기를, 아니 나 자신이 양 떼를 번성시키며 살아갈 수 있기를 시도해 볼 차례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포근하고 따스하며 타인들과도 더 가까와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양 떼의 삶은 저자도 말했듯 '나 자신'이 시작(<그림4>)임 기억하면서.

 

 

<그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