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과거에 비해 도시가 삭막해졌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이웃간에 소통이 없어진 탓도 있겠지만,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우후죽순 생겨난 고층아파트와 그 속에 입을 꽉 다문 각각의 집들, 그리고 거리엔 온통 차들만이 가득한 이 도시가 그 옛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자연을 벗삼은 시골풍경에 비해 낯설고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는 건축과 인간이 어떠한 상호관계를 맺어왔으며 진정한 건축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되새겨보고, 그러한 본질을 잊어버린, 작금의 건축현실의 잘못된 점과 개선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우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목이 좋은 곳'은 어떠한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선 공간의 속도와 이벤트 밀도라는 것으로 측정되는 보행자의 호감지수로 서울의 대표적인 몇몇 거리가 얼마나 걷고 싶은 거리인지 수치와 도표로 설명하고 있다. 골목과 마당이 사라져버린 현대의 아파트는 사람들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햇볕을 배제한 인공조명은 24시간 쉬지않는 산업사회로의 시대를 부채질했다. 높은 빌딩숲과 사무실, 럭셔리한 펜트하우스는 공간의 넓이와 높이, 자리배치만으로도 권력을 짐작케 하는 상징이 되었고 그것은 감옥이나 교회처럼 특수한 건물에서 역사적으로 효과를 발휘해왔다.

저자는 도시의 진화단계를 생물의 그것과 비유하며 세계의 대표도시를 예로 들어 이해가 쉽도록 각 단계별로 설명하면서 건축은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을 위한 건축이 이루어져야 함을, 나아가 그렇게 우리의 삶이 반영된 도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유기체와도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엔 자연 위에 군림하려 들거나 이용하려고만 드는 건축가들이 많아졌다. 옛 한옥이나 정자와 같이 그 시대에 맞는 재료와 아이디어로 집을 짓는 대신 교통과 무역이 발달한 지금은 여기저기 다 똑같은 재료에 특징이 없는 높은 건물들 일색이다. 또 사람이 기거하고 아늑함을 느껴야 할 공간을 겉보기에만 치중한 디자인으로 구축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도로가 도시를 점거해 버린 세태에 대해 저자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현재 서울의 한복판에 한강과 공원이 있지만 도로와 높은 건물로 꽉 막혀 접근성이 떨어지고 그냥 스쳐지나는 경로와 풍경으로만 자리한다. 좀 더 일상과 가깝게 자연을 즐길 수 있게 설계된 도시가 그리워 우리는 자꾸만 해외로 눈길을 돌린다. 타국으로 여행을 하게 될 때 처음 마주하는 것은 그 나라의 도심풍경이다. 파리와 뉴욕, 로마, 런던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는 가보지 않아도 떠올리게 되는 도시의 심벌이 있다. 각종 랜드마크나 역사적으로 이름난 거대한 건축물들이 그것인데, 이러한 도시의 특징들은 걷고 싶은 거리인 동시에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같이 수십년이 멀다하고 재개발을 거듭하는 것과는 달리 그곳들은 팰럼시스트 즉, 과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동양은 예로부터 비움과 상대적 가치를 추구한 반면 서양은 정확한 수치와 논리적 사고에 입각한 절대적 가치에 기반을 둔 문화가 사회전반에 깔려있어 건축에서도 개미집과 벌집같은 뚜렷한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 건축물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건축물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그 지방의 기후,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종교,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같은 이유로 건축은 다양한 분야에 촉을 세우고 지식을 쌓아 이른 바 종합예술을 하는 어려운 작업이기에 건축가 역시 대우받아 마땅하다.

건축은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미학의 위치에서 현재는 건물을 짓는다라고 하면 막노동꾼이라 일컫는 등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 건축쪽 전문가들 이외에 일반인들이 건축물에서 미적인 감동을 얻는 일이 그만큼 드물어졌다는 얘기다. 왠지 건축은 어렵고 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이유외에도 요즘 지어지는 건물들은 모두 뻔한 디자인에 운치나 정감 따윈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전통 가옥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지금의 주거공간과 다르게 대지와 함께 어울리고 자연과 대화하며 순응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과거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21세기의 건축은 높은 옹벽과 울타리, 지나치게 거대하고 지역 고유의 특색이 사라진 똑같은 건물들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또 투기적 재개발과 특정지역으로의 쏠림현상은 사회계층간의 위화감과 슬럼화를 북돋는 주요인이 되었다. 사는 곳과 평수에 따라 소속과 이웃이 달라지는 집단주의는 가속화된 도시의 개발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이러한 건축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국내와 해외의 건물을 예로 들어 사진과 함께 이해를 도운 부분은 건축관련종사자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공간이란 개념은 현실을 넘어 가상의 웹이나 상상의 세계를 지칭하는 말로도 대체되고 있다. 또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관음증이나 감시, 치안등으로 건축이라는 개념은 사회 곳곳의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로버트 베번의 책 <집단기억의 파괴>를 보면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이 겪었던 공황상태와 전쟁에서 주요건축물이 표적이 되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건축은 그 나라의 상징이자 반영구적일거라는 믿음의 존재이다. 인간인 우리보다 먼저 주저앉아 버리는 거대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충격과 상실로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전통을 간직한 고택과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간주된다. 좀 더 안락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지키며 쌓아가는 건축행위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건축인의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건축을 하는 것은 건축가들의 몫이지만 도시의 경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도시계획과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는 건축주가 될지도 모르는 각자의 마음 속 이상적 건물이 지금보다 인간미 넘치고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