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n Black :: Ann Cleeves 

책 소개에서도 에드거 앨런 포우의 [갈까마귀] 를 연상 시킨다고 하고, (예전에는 갈가마귀, 라고 했는데 표기법이 바뀌었나보다. 음산함에서 신경질적인 어조로 바뀐 느낌 이랄지) 그것을 소재로 한 책이라면 이미 저 유명한 조앤 돕슨의 비블리오 미스테리Bibliomystery <갈가마귀와 나이팅게일The Raven and the Nightingale> 이 있으니, 그에 대한 또 다른 재해석 책이라는 생각에 이 <레이븐 블랙>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높았는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실은, 너무 당연하게도 포우에 대한 오마주 라고도 미리 단정지어 짐작 했더랬다.

그러나 그 기대를 보기좋게 빗나가는 내용 전개에 한순간 맥이 빠져 책을 읽을 의욕마저 잠시 꺾였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흥미와 의문을 더해감에 비록 가독력의 파워는 다소 떨어져도 작가의 독특한 필치에 이끌렸다.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인 묘사 라는 것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무엇보다도 간만에 접하는 클래식한 퍼즐 미스테리 라는 점이 오랜 미스테리 팬으로서 강한 향수를 자극하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혹자는 크리스티를, 혹자는 딕슨 카를, 혹자는 엘러리 퀸을 떠올렸으리라. 얼핏 그것이 여기저기에 쉽게 영향 받은 흔적으로도 여겨지지만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그것이 앤 클리브스의 독특한 작풍 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읽는 동안 나름대로 범인을 추리하며 그 동기나 배경에 대해서도 가설을 세워봤지만 작가의 교묘한 말재주에 속아 넘어갔는지 안타깝게도 범인 지목은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의심하게 되는 사람은 사실 결백하고, 동조를 하게 되는 이가 사실은 범인 이라니,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테제가 이렇게나 뚜렷하고 일관적일 수가 없다. 밀실이나 다름없는 작은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모든 일이 공동체적으로 흐르지만, 그 질서를 파괴하는 이방인이 누구보다도 위협적이며 가장 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모든 붕괴는 바깥에서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 되지 않는가?

그것을 폭로 하려던 소녀는 죽음을 당하고, 그것을 누가 가장 드러내기 두려워 했는지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불안한 신경증에 걸린 마냥 어수선 거린다. 범인은 한사람으로 밝혀져도 평화로운 안전 지대였던 마을의 비밀은 전부 까발려진다. 그리고 가장 불분명한 동기를 가졌던 범인은 그 폭로 되는 현실로 인해 동기의 타당성을 갖게 된다. 처음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범인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어떤 심중을 두고 저작을 했는가를 고려해보면 비록 허망하고 씁쓸 하더라도, 현실에 빗대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왠지 모르게 영화 [도그빌] 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많다)

처음엔 이 책의 갈까마귀와 포우의 갈까마귀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 했지만, 매그너스에 대한 전반적인 묘사는 아무래도 강렬하게 그 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Tis some visito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Some late visito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This it is, and nothing more,
첫장에서 매그너스가 두 소녀를 맞이하는 장면은 마치 이 싯구를 그대로 재현한 것 같지 않은가.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별도로, 작가는 매그너스를 통해 포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건지도 모른다.

이방인이 가장 위협적일까, 아니면 공동체를 짜면서도 반드시 열외를 두는 집단이 위협적일까.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개별적으론 그 누구도 소속감을 느끼지 않았던 모든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쓰라리고 한편으론 섬뜩하다. 내가 피해자도 될 수 있지만 내가 범인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