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소설은 유쾌하고 따뜻하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느낌이 남다르다. 놀라운 상상력과 경쾌함 속에서도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이야기의 실체가 있었는 데,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으면서도 어쩐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앞에 보이지만 아른거리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은 이미지.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감정이 너무 또렷해서 마음에 커다란 자욱을 남기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더딘 이야기와 여백이 조바심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쉬게 하는 느낌이다. 충격적인 사건조차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듣게 하는 힘이 절로 느껴진다.

  9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비슷하면서도 닮아 있다. 인생의 남은 6개월을 보내는 마흔 살의 남자가 되돌아보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 <근처>, 열심히 살아왔으나 어쩌면 마지막에 남겨지는 것은 그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누렁 강 배 한 척>, 하늘의 애드벌룬을 쫓듯, 미래를 쫓아가지만 점점 더 손에서 멀어지는 <굿바이, 제플린>, 가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담긴 <깊>, 인류의 마지막 날 두 남자가 나누는 알쏭달쏭한 대화 <끝까지 이럴래?>를 읽으면서, 때로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멜랑꼴리아>를 떠올리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깨어나 끊임없이 어둠을 향해 총을 쏘면서도 그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양을 만든 그 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죽음을 정복하게 위해 신체를 냉동하고 맞이한 세계, 죽음을 정복한 세계 앞에 새롭게 출연한 바이러스는 남은 인류에게 냉동인간은 어떤 의미일까를 묻는 <굿모밍, 존웨인>,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자전소설 <축구도 잘해요> , 또 다른 지구의 이야기 <크로만,운>까지 여러 가지 세계를 여행하게 한다. 유쾌한 농담뿐만 아니라 SF적 상상력에도 발군의 실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