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중국혁명의 의미를 중국인 지식인 자신, 예를 들면 청조말기(19세기 후반) 캉유웨이 같은 유학자의 시선에서 출발하여 루쉰(1881~1936), 딩링(1905~1986) 이렇게 세사람의 작품과 생애, 직접 한 말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와 문학작품을 교묘히 짜넣으면서 중국혁명을 생생히 그려 보여주는 역사학자이다. 

 

 캉유웨이가 활동했던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동학혁명이나 김옥균을 위시하여 갑신정변이 있었고, 루쉰이 <아Q정전>이라는 새로운 소설을 통하여 중국의 문제상황을 보다 여실히 들어내는데 골몰했던 때에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많은 지식인들이 국권을 찬탈당할 위기를 맞아 점점 쇠락하여 넘어지는 그 시대를 나라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중국의 역사 얘기이기 보다는 우리나라와 이웃한 나라이자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던 지식인들이 거세게 몰아쳤던 시대의 물결에 맞서서 어떻게 저항하고 변혁시키려 노력했는지를 기록한 생생한 기록이고 한층 마음 아픈 역사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겪은 심리적 변화를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하여 보다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견해가 더 많았다면, 이제는 그 혁명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무시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침해, 민주적 절차(사법제도와 정치제도 모두를 포함하여)에 대하여 당혹감과 슬픔을 누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외부로 아주 조그맣게 드러난 중국의 인권상황이 이 정도였다면 그 모습조차 한번도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는 북한의 인권상황은 도대체 어떨지 상상이 안되서 더욱 끔찍하다.

 

딩링은 뒷날 비좁은 독방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주어진 책을 읽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첫해는 4권으로 된 마오쩌둥 선집을, 다음해엔 당이 공인한 마르크스-레닌 선집을, 그 뒤에는 엥겔스,스탈린 등의 저작과 당기관지 <홍기(紅旗)>,<인민일보>를 읽었다. 그녀는 남편인 천밍은 물론 외부인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생활했으며 한 달에 한 번 운동하는 것이 유일한 바깥출입이었다. 그녀는 <만일 내가 무언가를 쓰기 바랐다 해도>라는 제목으로 독방생활의 경험을 묘사했다.

 

펜도 없었고 종이도 없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어도, 방 안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고립, 철저한 고립. 그러한 고립무원의 상태는 난생 처음이었다. 문혁 이전이나 문혁기간만 해도 나는 비록 낮에는 수모를 당하고 얻어맞기도 했지만 밤에는 누추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밤부터 낮까지, 낮부터 밤까지 홀로 독방에 감금되어 있는  사람은 벽을 응시하거나 벽과 벽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다. 독방의 외로움은 독사가 내 심장을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의 글은<태양은 쌍간 강을 비춘다>로 스탈린상을 받은(1951년) 딩링이 1970년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1800일 동안 독방생활을 겪어야 했던 모습을 생생히 그려준다.

 

페미니즘을 얘기했다는 죄로 "인민대중과 프롤레타리아트를 소외시키는 봉건적, 부르주아적, 프티부르주아적,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허무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 귀족적, 퇴폐적, 염세주의적인 창작방식을 일소해야 된다"고 1940년대와 1960년대에는 노동을 통한 개조를 당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을 비판하고 개조하도록 강요받았다.

무슨 무슨 주의라는 말이 이렇게 무차별 폭력을 가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처음알았다.

결국  인간에게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권이 있다는 말은 그 시대와 정치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다. 하지만 인류가 무수한 오류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결코 놓지 말아야 될 중요한 가치 또한, 개인에게 부여된 인권을 절대로 빼앗거나 힘으로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행복한 개인의 삶이 없는데 도대체 혁명을 해서는 무얼 할 것이며 그 혁명이 의도하는 목표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행복이란 말과 개인이라는 말이 지극히 나쁜 의미로 사용되던 혁명의 시대에는 이런 의문조차 가질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가지는 사람은 모두 죽거나 기꺼이 감옥에 가기를 두려워해서은 안될 것이다.

 

책을 다 덮고 나면, 이 시대, 이 나라에 태어날 수 있었음을 감사함과 동시에 한층 깊은 슬픔과 한숨,분노등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