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런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책을 구입하다 오만원을 채우려고 함께 구입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이틀은 더할나위 없이 경건한 시간이 되었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양지 위를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는 동안이나마 현자가 되어 삶을 미소지으며 바라볼 수 있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했다.

예전 인간 수명은 기껏해야 35년~40년 정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고 자라서 짝을 만나 자식을 낳고 늙어 죽는 전 과정을 다 거쳤다.

조금 더 수명이 늘고, 늘고, 늘어,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기본적인 생로병사의 과정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무엇일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갖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보다 훨씬 더 바쁘다.

혁신이 자리잡으면 그것은 일상이 된다.

도약은 처음엔 새롭지만 우리는 곧 거기에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저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과정을 늘려서 겪고 있을 뿐이고,

죽음도 그 하나가 되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죽음'은 '이겨내거나' '굴복하거나' 두 가지였다.

과거에는 보통 죽어 간다는 것이 급격하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p.240)

죽음에 이르는 길은 매우 짧았다.

하지만 수명이 연장되고, 의학이 발달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길어졌다.

약물과 수술을 통해 죽음으로 가는 길이 전에 비해 훨씬 더 길어진 것이다.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육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점점 저물어 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요양원이나 중환자실같이 고립되고 격리된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뎌 내면서 말이다.' (p.20)

책에서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은 노인들이지만, 그중에서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이런식으로 여러 사람들의 세세한 사례를 읽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한 줄 한 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소중하게 읽어진다.

책 속의 사연들은 안타깝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작가의 생명에 대한, 그리고 죽음에 대한 차분하고 따뜻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한다.

건강 만큼은 자신했던 나 역시 죽음의 기로에서

의학 기술 덕분에 기적적으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우리는 분명 의학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의학에 너무 많이 의지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선택의 순간에 그 결정권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곤 한다.

위에서 인용한 글처럼,

생명을 조금 더 연명하기 위해 병원에 나의 마지막 삶을 맡기고,

그 마지막 순간을 통제된 삶으로 써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선택 가능성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중략....'뭔가를 하라.' '뭔가를 고쳐라.'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라.'p.266

가능한 한 최선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남은 삶의 질을 희생하는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한 방향으로 압력이 가해진다. 뭔가 더 많이 하는 쪽으로 p.334

미국에서 메디케어 비용의 25%가 생의 마지막 1년에 접어든 5%의 환자에게 사용되고, 또 그 가운데 대부분은 거의 아무런 효과가 없는 최후 1~2개월에 집중된다. p.237

병원에서 각종 약품과 고통과 통제와 호스로 우리 몸과 마음이 감금된 채 연명된 마지막 삶을 택할지,

아니면 평화로운 일상속에서 천천히 죽음을 맞을지의 선택의 순간

'자동모드'가 작동되어 우리 대부분은 병원으로 향하고 뭔가 조처를 취해왔다.

그러나 2004년 애트나 보험회사에서 말기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도한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선택 범위' 확대 접근법인 '동반케어'프로그램 2년 시행 결과

호스피스 이용률이 26%에서 70%로 폭등하였으며,

응급실 이용 횟수 절반 감소,

병원과 중환자실 이용률 3/2이상 감소,

전반 비용 1/4로 감소했다고 한다.

이에 더 넓은 범위의 말기 환자들에게 적용하자 병원 이용률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고령환자들의 중환자실 이용빈도가 85%이상 줄었다.

다른 예 하나 더!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의 사례

이곳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 시기에 들이는 병원비는 보통의 경우의 절반 수준이며 기대 수명은 전국 평균에 비해 1년이 길다.

배경은 이렇다.

1991년부터 의료진과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시기에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아래의 설문지를 미리 작성하면 의사는 숙지하고 있다가 이를 존중했다.

위기와 공포가 닥치기 전에 사전에 의사와 환자가 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것 뿐인데,

의료 비용과 고통은 줄이고, 생명은 연장되었다.

1.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 삽관이나 기계적 인공호습기 같은 공격적 치료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3. 항생제 투약을 원하십니까?

4.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관이나 정맥 주사로 영양 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 책의 장점은,

죽음을 맞는 방식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준비없이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아쉬움과 후회를 품게 된다.

이 책은 보다 인간적인 마지막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호스피스' 방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의학이 너무나 생명을 살리거나 연장하는 물리적인 방향으로만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의학이 많은 성취를 이루기는 하였으나, 그 안에 깃든 모순과 문제점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제야 우리들은 그 모순들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보완하고자 하는 과정중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 경도되어 내달려오다 잠시 뒤돌아보며 숨고르기를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스티븐제이굴드'의 ]중간값은 중요하지 않다] 는 이야기가 나온다.

『풀하우스』2부 죽음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같이 보면 또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떠안고 있던 두려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담담하게 맞설 용기를 준 책.

그동안 나는 '죽음'에 대해 쿨~ 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회피한 것 뿐이였거나,

그냥 손 놓고 외면한 것 뿐이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마련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