셍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셍떽쥐페리가 어릴 적 생애 처음으로 그린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자, 어른들은 "그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하고 대답을 합니다.

 

 

셍떽쥐페리는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구렁이의 속을 이렇게 그려주었습니다.

 

 

그는 어른들에게 매번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만 어른들이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어른들은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속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하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들을 집어 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계산 그리고 문법 쪽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셍떽쥐페리의 어릴 적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셍떽쥐페리가 그린 첫 번째 그림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를 어른들이 모자로 인식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회현상이나 일상에서 겪는 일들에 대해 단정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러다보니 어떤 현상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 현상들을 종합해 분석하기보다 결론부터 내려놓고 거기 맞는 사례를 찾다보니 본질이나 진실에 접근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야마 잡는'일이 실상은 사건이나 사람의 본질을 꿰뚫기보다는 피상적인 현상만 나열해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 건 아닌지….

기자들은 시대와 호흡하면서, 불의에 맞서 싸우며 시대정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현실에선 곳곳에 덫이 놓여있습니다. 대충대충, 또는 부조리와의 타협, 데스크의 부당한 지시와 판단에 아무 설득도 못하는 보신, 적당주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에 일부 언론사가 걱정을 했습니다.

공정보도와 진실보도에 앞장선다면 정권에 불안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론은 언론인 스스로 자정과 자구노력을 통해 변화하고 개혁하도록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동안 타성과 타율에 젖어있던 한국의 기자들 역시 이제 하나둘씩 깨어나, 언론의 변화와 개혁에 스스로 앞장서야 합니다. 언론은 더 이상 개혁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한국의 언론에 대해 아직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