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질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좋은 영화나 책의 기준을 다시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본다. 그 좋은 책 중 하나가 이번에 읽은 '어린 왕자'이다. 아주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짧은 내용에 그림까지도 있으니, 책을 안 읽었던 어린 시절에도 거부감 없이 봤던 것 같다. 행성을 돌아다니던 내용하고, 여우를 만난 것 하고, 갑자기 어린 왕자가 뿅 하고 없어졌던 것 정도가 기억난다.

  그때는 어린 왕자가 죽었다는 것조차 몰랐었나 보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어린 왕자가 하늘로 날아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게 아니라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왕자가 말하는 은유적인 표현을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 했나보다. 어렸을 때는 활자 그대로만을 받아들였다면, 스물세살에 읽은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구나 싶다.

길들이다.

  많은 사람이 감명받고 동감하는 파트 중 하나가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일 것이다. 여우는 사람들이 많이 잊고 사는 진실 하나를 말해준다.

"잘 가!" 여우가 말했다.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하는 구절이다.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 서로 알아가고, 많은 시간을 나누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 서로 길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서로 길들이지만 어느 순간에 가면 헤어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작은 다툼이든, 물리적 원인이든 죽음이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 헤어짐을 우리는 피하려고 하지 말고 책임을 지고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의 투덜대며 하는 말을 들으며 너무 깊게 생각하고 쉽게 상처를 받아버린다. 그리고 여린 마음에 상처가 난 어린 왕자는 그냥 장미꽃을 떠나게 된다. 장미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장미꽃의 마음을 읽지 못한 어린 왕자였다. 어린 왕자를 보면서 이십 대의 나와 별 다를 게 없구나 싶어서 조금 씁쓸했다. 나랑 비슷하다. 정말 친한 친구나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져 본 적이 별로 많지는 않지만 헤어질 때마다 나는 그냥 훌쩍 떠나버린 것 같다. 여러 번 그랬다.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았었고, 그냥 갑자기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연락도 안 받고, 연락도 안 하고. 나의 소심함은 인사를 하고 떠난다는 것이 참 버겁나 보다. 그리고 그렇게 매정하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없어지는 내가 옳은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우가 말한 것처럼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데, 나는 그걸 몰랐다. 굉장히 친했던 친구와 영영 다시 안 볼 것처럼 싸워놓고 그렇게 헤어지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 심하게 싸운 것도 아닌데,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신 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또 어떻게 인간관계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참 어려운 것 같다. 서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책임을 진다는 것은 관계를 다시 맺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어렵다. 오히려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길게 썼지만 어린 왕자는 어른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는 책이다. 어른들이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따뜻한 동화책 어린 왕자.

p.s 이번 글은 신변잡기용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