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나선 책을 읽는 시간도 부족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은 더욱 부족합니다. 혼자 주절주절 글을 쓴다 해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덮어야 할 때가 많고 정리되지 않은 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서 마음 속 앙금처럼, 때론 장롱 뒤 먼지처럼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한 번 닦아내야지, 정리를 해야지'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어느 정도 시간이 날 때까진 무리라고, 지금은 참아보자고 다독여봅니다.

시인 엄마와 초등학생 아들이 함께 만든 동시집, 「엄마의 토끼」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엄마가 되면서 자신의 글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졌을 시인 엄마가 시를 쓰고 아들과 함께 시집을 냈다는 사실이 제가 살아갈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요.

「엄마의 토끼」의 저자, 성미정 시인은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습니다. 강원도 정선 출신이란 단어만으로도 삶이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어릴적 자연을 충분히 느끼며 자랐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정선 아리랑의 유명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남매 중에 둘째,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라서 시를 읽기 전에 이미 작가에게 동료애가 느껴집니다. 「엄마의 토끼」에 실린 <둘째>라는 작품을 읽을 때, 작가의 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둑질>이라는 시에서 작가가 훔치려고 한 것이 돈이 아니라 엄마 마음이였다는 것에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토끼」는 시인 엄마가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동시로 표현한 듯 합니다. <수학공부하는 일요일엔>에서 꼬마 아이가 '엄마랑 아빠는 내가/손가락과 발가락이 50개쯤 있어서/수학문제를 술술 푸는 게 좋아요/아님 수학문제 몇 개쯤 틀리더라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10개씩/붙어있는 편이 좋아요'라고 항변합니다. 시인 엄마가 수학 문제를 틀리는 아이를 보며 괜찮다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듯합니다.

도시에서 아들 하나 키우는 엄마의 일상, 엄마가 느낀 아이의 마음이 아이의 눈으로 동시로 풀어져나오다가 어릴 적 엄마가 아이였을 때 이야기도 함께 동시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아이의 마음을 미루짐작한 동시를 읽을 때면, 정말 아이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는데 엄마가 아이였을 적 마음을 적어놓은 동시는 구절구절 마음에 와닿습니다.
동시는 아이의 마음과 같아서, 어른이 아이의 마음을 흉내내는 것보다 어른의 마음 속 아이를 찾아내어 시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인 엄마의 동시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갑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책상에 앉혀놓으려는 엄마의 마음과 한편으로 과하게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등 시인의 마음이 곧 제 마음이 됩니다. 시인 엄마 성미정 씨의 장래희망은 몽상과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이고 초등학생 아들은 곧 중학생이 될 건데 일곱 살부터 지금까지는 치프 셰프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치프 셰프를 꿈꾸는 아들과 시인 엄마가 계속해서 함께 쓰는 동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저도 어느 때에는 우리 아이들, 산골 사남매와 함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