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그릇을 닮고 정신은 육체를 닮고 눈물은 인간을 닮는다. - 이세룡 시 [눈물] 인용" 

중간 중간에 나오는 짤막한 인용구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맛이 있다. 

우리가 진정 지식인이라면, 자기의 죄에 대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가.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씀입니다. 우리 나라에 지식인이 없지는 않은데 그 존재가 너무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백성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닿는다 해도 기껏 모깃소리나 파리 소리 정도로 들릴까 말까 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중무장으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학이야말로 고도로 계산된 정치 형태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더 날카롭게 갈등하고 대립하고, 더 처절하게 싸우고, 보복의 극한까지 밀고 나가야 할 문학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시기는 2002년이다. 

그때에 비하여 11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말은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연을 말하고,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아파하는 그의 시선은 

온전히 시인의 누나를 생각하는 시선과도 닮아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기억의 힘이라는 게 썩 믿을 만한 놈이 못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쏟은 유창한 말보다도 어떤 몸짓이나 얼굴 표정, 그 때 입고 있었던 옷이나 신발, 한참 무엇에 몰두하고 있던 자세와 그림자, 더욱이 배경으로 멀리 보이던 계쩔의 색깔이나 바람, 향기는 잊히지 않고 또렷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내게 누님은 그런 여러가지 모습들로 기억이 생생하다.

...

누님은 그런 분이다. 한번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삶의 엄혹함에 이렇게 밀착된 사람을 여태껏 보지 못했다. 자기 신세를 푸념하지도 않고, 세상을 탓하지도 않고,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내했다.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한 적도 없고, 어렵다고 손 벌린 적도 없다. 오히려 부모로서 아무런 책임도, 부양의무도 지지 않았던 아버지, 어머니에게 소고기나 생선 한 토막, 하다못해 참치 캔 선물 세트나 국수 한 다발이라도 끝까지 보냈던 사람은, 잘난 삼형제가 아니라 셋방 전전하는 누님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풍찬노숙의 세월 정리하고 머나먼 항해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가장 섧게, 가장 오래 운 사람은 누님이었다. 지금까지 누님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는 그 자신의 그림자였고, 가장 가까운 친척은 겨울바람이였으며 교회에 나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마음만이 오직 유일한 동반자였다.

...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기다. 밀레니엄이다. 언론 문건에다 옷 로비 파문이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 고 있는데, 내가 볼 때는 우리의 삶이 주위 사람들이 떠드는 만큼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누님처럼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일 뿐. 그렇다. 삶은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내기가 아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싸워 이기고 나아가는 것이다. 삶을 능동적으로 경작하는 농부가 되는 일 이다. 삶의 주름진 고랑을 갈아엎오바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눈물이, 상처가, 고통이 얼마나 소중한 씨앗인지, 파종한 만큼만 수확을 바라는 정직한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누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인의 말로 마무리 한다. 

가을에는 쭉정이도 고개 숙인다. 하늘에 차마 고개 들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땅은 다 용서해주는데도 말이다.

이슬 하나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