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언니네 이발관도, 보통의 존재라는 책도 이름만 들었지 크게 관심을가지지 않았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여행을 좋아해 여행 앞에서 망설이는 내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줄곧 여행 에세이만 읽어왔다. 그런 내게 생소한 산문집 한 권이 들어왔다. 베이지 색을 띄는, 촉감이 조금은 거친 표지부터 한 손에 들어오는 책 크기까지! 보통의존재라는 저자의 전작처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냥 시간이 날 때 틈틈이읽어야겠다 다짐했다. 가수가 쓴 책이라는 선입견에 문체가 그저 그렇지 않을까 했던 내 선입견은 한 장씩넘기며 점점 녹아 내렸다. 과연 첫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를 만한 작가구나……….

 

‘뭐해요?’

저자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언제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해서 만나는 만남이 아닌, 오로지그 사람이 ‘뭐해요?’라는 문자에 만날 수 있는 이 둘의관계에서 ‘뭐해요?’는 만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만남이 또 언제 돌아올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뭐해요?’라는 말 전에 헤아릴 수 없는 기다림이 있었기에…. 인스턴트 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스스로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적당히 사랑하는 요즘, 누군가와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퍼붓고 싶은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할 수 있겠어. 단지 니가 좋기 때문이라는 말 외엔 다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데. (p. 233)

 

한 번의 이별을 겪은 두 남녀가, 다시는 사랑이란 걸 하지 않을 거라굳게 다짐했던 마음을 접게 만드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p. 125)

 

마치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책을 읽다 스르르 눈이 감기는 것처럼. 누군가에게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또 읽고 싶을 때 천천히 읽는 책이야 말로 내 맘을 참 편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난 참 마음 편히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된다.

하여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영원의 조각들.

그 아름다운 조각들을 너와 함께 새기려는 게 그리 큰 욕심일까. (p. 97)

 

두 사람이 만나 겪었던 일들.. 사람과의 만남에 결론이란 걸 지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작가에게 당장 찾아가 “그래서 그 분이랑어떻게 됐어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곰곰이 되돌아 보니 저자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이 만남의 결론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누군가에게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참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주려는 건 아닐까?

 

나에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난 먹을 거에 크게 집착하는 편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안 고프면 안먹고.. 먹을 때도 크게 감정 변화가없어 함께 밥 먹는 친구들은 ‘너 참 맛 없게 먹는다..’는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는 말은 왜이리 좋은지. ‘잘 지내?’라는 말은 그저 안부만 묻고 끝날 것 같지만 ‘밥 먹었어?’는 ‘(안 먹었으면) 나랑함께 먹을래?’라는 느낌이 들어 참 설렌다.

내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남이 듣기에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아닐까? 받는거에 익숙해져버린 요즘 잊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밥 먹었어?’라는문자 하나 남겨야겠다.

언제들어도좋은말이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