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필치가 돋보인 로맨스 소설.

 

 나주 임씨 29세손 임 위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난 바람 같은 이, 은목의 로맨스가 담긴 작품이다. 종손이라는 묵직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임 위와 끼룩끼룩 웃으며 섬머스마 처럼  쫓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은목은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도 접점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위의 시선은 늘, 은목의 모습과 끼룩끼룩거리는 웃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은목의 이름도 임 위의 어머니 해남마님의 심부름으로 갔다가 울굿불긋한 갓 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놀란 임 위에게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주머니의 부탁을 받자마자 문득 자신의 서고 앞에 있는 은행나무를 떠올려 '은목'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은연중에 위의 시선은 은목에게 둔다. 시간이 흘러 서로 어엿한 모습으로 마주 보게 된다. 은목에게 표현하지 못한채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위와 다정한 시선과 행동에 점점 더 위의 모습에 반하게 된 은목의 모습은 두근두근 하면서도 아릿하게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다던 위가 은목이 올 때마다 종손이 아니면 군입을 뗄수 없는 '매화차'를 매개로 단정하면서도 손끝이 간질거린다. 종손에 대한 책임감, 막중한 임무 때문에 은목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서스럼없이 자신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자는 말을 아낀다. 새삼 종손이라는 것, 종부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자유와 사랑을 억압하는 가에 대해서도, 집안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애를 쓰는 가에 대해서도 위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고스럭한 종가의 고택이 궁금해지고, 위와 은목이 갔던 전주의 덕진공원이나 그들이 함께 매화차를 마시며 내밀한 연못이 있는 아기자기한 연화정이 너무나 궁금했다. 덕분에 이번에 경주 여행을 다녀오면서 경주최씨 고택을 보면서 위도 이런 공간에서 살았겠구나, 싶었다. 위의 다정다감함이, 은목의 활달함이 좋아 도서관에 빌려 읽었던 책을 이번참에 다시 한번 마주 하게 되었다. 다시 읽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다정함과 유쾌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