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품 변기도 의미 부여해서 갖다 놓으면 예술이 되는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흑과 백, 선과 악.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은 어쩐지 껄끄럽다. 그래서 ’잊혀진 작품들’에 사는 인보일파의 위스키에 젖은 술주정이 자꾸 신경 쓰였는지도...  인보일이 말하는 iDEATH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길래 그 애끓는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해 집단 자살을 거행한걸까. 그냥 악의 무리의 객기로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다.

이름도 너무 달콤한 워터멜론 슈가. 음... 동화책의 배경같다. 7개의 해가 뜨는 세상. 강도 많고 숭어떼도 많고 모든 것이 평화롭다.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건 어쩐지 괴기스럽고 의뭉스럽다. 이상하리만큼 완벽한 이 동네에서는 그 고요함 아래로 미친 듯 날뛰는 소용돌이가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마가렛 vs 폴린, iDeath vs Forgotten works, 원로숭어 vs 숭어 양식장. 이 대립항들이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는 것일까. 그럼 마가렛이 선인가 폴린이 선인가. 마가렛은 왜 그렇게 잊혀진 작품들에 집착했던 것일까. 왜 자살을 했을까. 왜 하필 마가렛의 장례를 하는 날은 소리가 없는 검은 해가 뜨는 요일이었을까. 책을 읽는데 할애한 시간의 10배가 넘는 시간을 역자 후기를 읽는데 들였다. 그래도 아직 모르겠다. ㅋ

[ 그러나 우리는 그 희미한 박명 지대를 이해하기 위해 워터멜론 슈가가 무엇인가, 아이디아뜨가 무엇인가, 인보일은 무엇인가, 마가렛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름들과 모든 사물들과 모든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고 규정하려는 순간 그것들은 그 존재의 빛을, 그 박명의 실체와 개념들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워터멜론슈가에서, 리처드브라우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