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은 게 거의 9년 전이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전,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아주 악랄하고 교활한 그런 종류의 살인자를 상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왠지 왜소한 체구의 말수가 없는 인물이 자꾸 그려졌다. 작가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라는 인물을 마치 실존인물인 것처럼 묘사한다.(읽다보면 한 살인자의 생애를 담은 전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책의 첫 페이지에 사드, 보나파르트, 등의 실존 인물에 비유를 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그르누이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후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어린 시절을 어느 마음씨 좋은 부인 밑에서 보낸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 구두장이의 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어느 조향사의 상점을 방문한 후 그르누이는 향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인정받아 조수로 일하게 된다. 사실 그르누이에게는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인지 향이나 냄새에 민감하고 유독 후각에 집착을 한다. 재밌는 점은 그르누이가 거쳐간 곳은 모두 폐허가 된다는 점이다. 그를 키워준 부인도 병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그를 고용한 조향사의 가게도 폭삭 망한다. 그 후에도 그르누이는 이곳 저곳을 옮기며 자신만의 향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마을에서 소녀들의 머리카락을 얻기 위해-그 향으로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고자- 소녀들을 죽인다. 2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그의 범행은 참 치밀했다. 그렇게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않고 유유히 달아나는 걸 보고 참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다시 <향수>를 보게 되었지만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들지않았다. 주인공도 내가 상상한 것과 너무 달라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어떤 향이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향을 표현한 작가의 세심한 묘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