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유신시대

 

 

YH무역 사건, 부마항쟁,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까지 70년대 역사는 민주화와 인간의 존엄성이 무력으로 탄압받던 암울한 시기였다. 김제규의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그 당시가 나에겐 중학생 시절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 늘 피동적인 교육만을 받아왔던 혼란스럽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바로 오랜동안의 독재가 최고조로 정점을 찍던 순간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유신시대의 끝자락에. 신문 배달부의 눈으로 바라본 일련의 사태들이 우리 어린 시절의 시각과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나이 19세라면 독재 정치의 권력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는 나이겠지만 '달배'(신문 배달부)들의 시각과 지식인의 차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기도하다. 이는 나이에서 오는 간극도 해당된다. 그 당시 교육이라는 것은 국민을 세뇌시키는 주입식 교육이었다는 점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조금씩 민주와 독재라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 사회 속에는 이에 항거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도 그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독재가 막을 내리자 국민들은 좌와 우로 양분되어 옹호와 비판이 끝없이 지속되던 기억이 난다. 청와대 옆 적선동은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고 탱크와 군인의 작전 통로가 되었고, 역시 청와대로 향해있는 가정집의 창문은 모두 폐쇄해 국민들의 주권마저 또다시 군사 독재에 내 주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봄을 기대했지만, 또 다시 쿠데타로 말미암은 전두환 독재와 맞서 싸워야 했고 수많은 젊음은 피를 흘려야 했다.

 

 

달배들이 바라본 사회는 아마도 학생들이 바라본 관점과 사뭇 비슷하다. 그들의 신문 보급소의 모습, 그리고 사랑과 우정이 풋풋한 마치 순수한 소년과 같다. 순수함이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에서 하나둘씩 터지는 굵직한 사건들을 접하며 독재와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해가는 과정들은 매우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제규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는 50대가 되었을 그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느끼고 있을까. 추억의 편린이지만 아마도 편협된 시각을 버리고 이 사회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30년 전 이야기를 [대통령이 죽었다]라는 책을 통해 접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가 배운 정치, 경제, 사회, 도덕은 우리를 까막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그 시절이 아깝고 또 아깝기만 하다.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뛰어놀기만 했던 시절, 무엇인지도 몰라 사회에 대해 비판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하다. 대학 입학 후 원 없이 화염병을 던져보고 최루탄도 실컷 마시고 민주화라는 열망을 가슴에 품었던 청년기가 그나마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꿨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자위해 본다.

 

비록 성장 소설이라고는 하나 30년 전의 시대를 살아온 독자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다. 달배들은 이제 386세대로서 나라에 민주화를 정착시킨 장본인이 그들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 서로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사실을 좌시해선 안될 것이다.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