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본 후 늘 느끼는 거지만, 앨범이나 음원은 라이브로는 한정된 사람만 들을 수 있으므로 이에 따른 보조수단의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현장에서의 펄떡이는 생생함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팬텀싱어 콘서트만해도 녹화방송과 생방송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의심을 불러 일으켜 유료관객을 앞에 두고 어떤 음향과 음질을 구현해 낼지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다.

 

2층 꼭대기 좌석이 R석이라니 불만이 있었지만, 운좋게도 1층의 중앙으로 갈수가 있어서 쾌재를 부르며 관람을 시작했다.

 

중앙에 설치된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에 현악과 피아노 연주자들이, 오른쪽에는 밴드가 있었고, 록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장엄하고 웅장한 곡으로 맨 윗계단, 중간, 아래계단 쪽에 팬텀싱어들이 자리를 잡고 시작했다.

처음에 음이 뭉개지고 마이크가 몇번 삑삑 거렸으나 바로 잡혀서 그다음부터는 양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위도 아래도 보지마, 옆에만 봐~

우스개 소리로 이런 유머가 유행한 때가 있었는데, 이동신과 곽동현이 부르는 카루소는 그야말로 입이 쩍!

특히 이동신의 파워 넘치는 보컬은 왜 용량이 적은 스피커는 찢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지 충분히 이해가 될 만 했고, 공연 말미에 기대해도 좋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하더니, 분명 기대이상의 역동적인 춤을 보여 주었으며, 솔로무대에선 선글라스를 끼고 성악에도 랩만큼이나 빠른 노래가 있음을 알려 줬다.

 

루키 곽동현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지만, 그래도 그의 주종목은 시원하게 쫙쫙 뻗는 고음과 이어지는 보컬이 강점인데 그야말로 잠시 물밖에 나왔던 물고기가 다시 물에 들어가 자기 세상을 만났다는 듯 청중을 압도한 시간이었다. 

그는 5년전 내가 보았던 원킬이라는 이름으로 선배 가수의 게스트로 나왔던 수줍은 록커에서 어느새 마성의 록커로 성장해 있었다.

 

 

김현수와 손태진의 꽃이 핀다에서는 부드러운 베이스와  더 부드러운 미성의 김현수의 조화가 아름다웠고, 유슬기 백인태의 그랑데아모르에선 TV에서 봤던 백인태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를 직접 확인하면서 폭풍같은 그들의 소리에 빠져 들었으며, 유슬기의 현란한 ㄹ발음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박상돈,손태진의 저음과 저음이 만난 시간은 오래 기대어 노래를 듣고 싶어질 정도였고, 마치 짠것처럼 손태진이 먼저 Ready? 하자 청중들이 000라고 답을 하고..

이어지는  박상돈의 끼사스에서 보여 줬던 몸동작..

뒤에 나온 4테너의 넬순도르마에서는 노래 도중 뒤로 갔다 다시 앞으로 동작을 선보여 조용한 음악을 듣다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아마도 유슬기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번 콘서트에서 나의 시야에 들어 온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는 백형훈이다.

그럴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느닷없는 잔망미와 섹시미..

스탠드 마이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올리는 것을 난 보고야 말았다.

곽동현과 함께 부른 날마다 기다리라는 록에서는 깨끗하게 쭉 올라가는 고음, 솔로 무대에선 약간 감정선이 올라간 감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뭐 이상할 것도 없지 싶고, 예전에 록뮤지컬을 한 경력이 나오는 것도 같고...

록에 대한 애정은 고훈정에게도 있는 듯 하다. 팬텀싱어 경연에서 퀸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의 노래를 고은성과 함께 부르기도 한 걸 보면..

만약, 록뮤지컬을 하게 된다면 백형훈, 곽동현, 고훈정 이 조합도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단상...

곽동현이 조용한 오디션장에서 이곡을 불렀을 때 심사위원들의 생경하다는 표정과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던 심사평, 대중음악인이 두 사람이나 있었음에도 바리톤 손심사위원이 록커도 한명있으면 좋지 않겠냐? 고 기사회생시켰던 일화를 떠올리면, 때론 그 분야가 아닌 사람이 봤을 때 선입견 없이 잘 볼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곽동현이나 백형훈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자면,다음 콘서트에선 폭발적인 록을 부를 때는 강제 스탠딩 시켜 주길 바란다. 이런 노래를 앉아서 듣는다는 것은, 마치 김빠진 탄산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산에선 다들 눈치 보느라 괜히 엉덩이만 들썩거렸다는 후문이 있다. 

 

솔로와 듀엣의 무대에 이어 본격적으로 흉스프레소, 포르테디 콰트로, 인기현상의 노래가 이어졌다.

결승 2차전 생방송에서 이그러진 음으로 듣고서 분노의 삿대질을 많이 날렸던 나로서는 이번에 제대로 듣고서 다시 한번 음향감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흉스프레소가 나왔을 때는 더 유심히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다른 청중들도 그러했는지, 엄청난 환호가 이어졌다.

고은성 하면 뭐죠?하고 백형훈이 청중들에게 물으니, 한 남성관객이 "얼굴!"이라 해서 다같이 웃기도 하고..

 

고은성이 솔로로 나와서 검은색의 실크소재로 추정되는 셔츠 3개의 단추를 풀어 헤치고 부른 라틴팝과 함께 한 도발적인 몸짓에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오고..

 

이준환군이 빠진 사랑책은 어떻게 부를까 했더니, 편곡이 달라진 채로 김현수가 불렀고, 무려 무반주로 시작한 이벼리의 고독과 관련된 노래는 그의 변함없는 노래 부를 때의 자세처럼 뚝심있게 부른 것 같다.

 

사이 사이에 팬텀싱어들의 아기때 모습부터 1차 오디션볼 때,삭제하고 싶은 영상과 자신있는 부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손편지로 쓴 영상들이 나왔다.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던 곡도 했는데,포르테 디 콰트로의 김현수,손태진,고훈정은 각기 다른 색깔의 우산을 쓰고 팝을 노래했고, 백인태 유슬기 이벼리 이동신은 송골매의 노래를 하면서 객석난입해 분위기를 뒤집어 놓기도 했다.

이때 입은 이동신의 트레이닝 복장은 뒤를 위한 복선이었다...

 

끝곡으로 뮤지컬 넘버를 다 같이 불렀고, 그때 차 시간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앵콜곡이 콘서트의 백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나가고야 말았는데...

엄청난 곡이 있었을 줄이야..

 

작년 여름에 록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 주듯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음악대장이 부르기도 했으며, 신해철이 20여년전에 이미 클래식 편곡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고, 무슨 국산애니메이션 OST에 오케스트라 연주냐, 그것도 런던필하모니로..

그의 등뒤에서 혹은 대놓고 비웃음을 날리는 온갖 말들이 많았었는데, 한참 지난 뒤에 이렇게 실력있고 멋진 후배들에 의해서 불리워지다니, 이제서야 작곡자 의도대로 연주되고 불려지는 것인가?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런지, 명곡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는다고 해야 할런지...

 

전혀 꿈에도 생각지도 못 했던 영혼기병을 놓친 대신에 헤일로를 들은 걸로 또다시 자기위안을 삼아야 하나?

이곡을 두번씩이나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잔머리를 굴리다 놓치고 만 내 자신이 밉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2014년 12월 추모콘서트에서 넥스트의 연주로 신성우가 부른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부산에서의 첫공연을 시작으로 대구,인천, 서울에서의 3회 공연이 남았지만 이미 좌석은 매진이 된걸로 나오는데, 한번 더 가서 앵콜곡까지 다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