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더 자주 악몽을 꾼다. 수능 시험지를 붙들고 끙끙거리며 다리를 떨다 결국엔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 누군가에게서 도망쳐야 하는데 계속해서 제자리만 돌고 있는 꿈, 정말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이 지금의 나를 비웃으며 짓밟는 꿈,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리는 꿈...버전이야 매번 조금씩 바뀌지만 대강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꿈들... 이런 꿈속을 헤매이다 깨면 다행이다 싶은 안도의 마음보다 한없는 슬픔과 명확치 않은 희미한 분노를 느끼곤 한다. 그리고 나는 내게 자문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분노의 대상은 누구지? 결코 바꿀 수 없는 과거? 아니면 형편없는 지금의 나? 그것도 아니면 불투명하다 못해 암흑과도 같을 미래? 결국 나는 내 인생의 시간선상에 있는 내 자신 모두에 대해 분노하는 꼴이 되고 만다. 등신같이...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겁이 난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잔인하고 비정한 모습의 또 다른 나를 누군가가 눈치챌까봐 두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을 향해 욕을 하고 세상을 저주하고 삶에 분노하는 또 다른 내가 언제 밖으로 튀어나올지 불안하다. 세상을 최대한 아름답게 보려고 최면을 걸고 기도를 하며 좋은 글귀가 가득한 책들을 읽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아니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지... 나는 그것이 두렵다. TV속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고 벽을 향해 사소한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울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면 어쩌면 나도.. 그래 정말 어쩌면 나도『02』의 그들처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사과의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득하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분노를 폭력과 살인으로 표출한다. 뉴스에 나오면 욕과 비난을 꽤나 받아야 할 그런 인간군상들... 사적인 감정 조절 수단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방법인 폭력과 살인을 선택함으로써 김사과의 소설은 섬뜩함과 광기가 흘러넘치는 옴니버스식 공포영화 다름 아니다. 수위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분노의 표출에는 수위조차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선언하는 듯한 무신경에 가까운 폭력이 오히려 나의 신경을 잔뜩 곤두서게 한다. 내 안에 숨죽여있던 분노를 흔들어 깨운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폭력과 살인을 부르는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김사과는 분노의 근원을 공포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 공포는 또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공포는 바로 개인인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써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 내가 혀깨물고 죽지 않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찌찔한 인생의 굴레. 화려한 인생도 쳇바퀴 돌 듯 하면 심심하고 답답할진대 하물며 찌찔한 인생의 쳇바퀴야 오죽하랴... 그렇다고 스스로 혀깨물고 죽어버리기에는 비록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 않을지라도 너무 억울한 삶이고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를 폭발시킬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대상이 불명확한 것에 대한 혹은 너무 거대하여 그 존재를 인식할 수조차 쉽지 않은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 그 분노를 순간순간 참아내며 뭔가를 하면 할수록 빚만 지게 되는 인생을 살아가기에 젊음의 피는 너무 뜨거운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정의를 외치며 거지같은 세상을 향해 돌팔매질하기에는 서로서로는 너무 무관심하다. 결국은 복불복인 인생에서 누군가가 누려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잃어야 하는 삶의 이치에 수시로 찾아드는 분노를 누그러뜨릴 자신만의 비법을 찾아가며 사는 게, 그게 다이다. 이 지랄맞은 인생이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