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라고 하면 추리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것이 편견이라고 하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다작을 하면서도 추리라는 장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작가이기에 더더욱 그런거 같다. 간혹 단순한 추리물이라고 보기 힘든 작품들이 나오곤한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작품은 "편지" 이다.

 

 "편지"는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린 눈물겹고, 피보다 진한 형제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소설이다. 동생의 대학진학금 마련을 위해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형과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동생,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헷갈리는 불쌍한 두 형제와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는 편지이다. 그리고 동생의 옆에는 늘 곁에서 지켜주는 한 여자가 있다. 형이 보내는 편지가 주 내용이지만 그 편지에서 동생에 대한 형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로 괴로워하면서 형을 원망하면서 살던 동생도 나중에서야 비로소 형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따스한 작품이었다.

 

 "편지"처럼 단순한 추리물이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 "사명과 영혼의 경계"를 만났을 떄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꼈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메디컬 스릴러로 분류되는 작품인 듯 표지에 적혀 있었다.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기 시작했을 떄 처음엔 익숙한 그의 작품이 아니라서 읽기가 쉽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의학적인 부분이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알기 쉬운 말들이지만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유착이나 ICU라는 단어들에서 소설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차츰 읽으면서 익숙해지자 언제 그랬다는 듯이 금새 읽히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수술을 받으러 가셨다가 돌아가시면서 혼란스러웠던 유키는 어느샌가 어머니 유리에의 곁에 있는 아버지의 집도의 니시조노를 보게 되면서 아버지의 수술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니시조노 밑에서 의사로서 배우면서 혹시 자신의 아버지의 수술이 의료실수인지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유키 개인의 사명과 인간적인 성장.

 

 능률을 앞세우다가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기업의 사명과 양심, 자동차 회사의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에 말려들어 연인을 잃고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해 빗나간 복수를 하려는 회사원 조지가 마지막에 보여준 따뜻한 양심, 여기에 미운털이 박힌 형사 나나오가 보여주는 투철한 사명감이 뒤엉킨 이 세가닥을 마지막 순간에 인간적인 호소로 풀어낸다.

 

 이렇듯 여러 사람들의 단순한 사정들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의 메티컬 스릴러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한 사람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이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처럼 각자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메디컬 스릴러가 될수 있다는 사실. 그런 사소함들이 소설의 시작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