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좋아 읽기로 했다. 산문집이라고 하니 인생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견해가 담긴 에세이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책은 방향도 없고 목적지도 없었다. 그저 이리저리 나 있는 오솔길을 걷다가 쉬다가 옆으로 샜다가 그대로 멈추는 이야기 들이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나니 목적과 교훈이 뚜렷이 남는 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차분해졌다.

 

책을 읽다가 졸았다. 느긋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때로는 지루했다. 아름다운 문체들이지만 긴 문장이 한국어이면서 쉽게 이해되지 않아 다시 읽어야 하는 구절이 많았다. 두번 세번 읽다보면 마음이 뭉클했다. 참 이상했다. 이것이 작가라는 직업의 힘일까.

 

나는 최근에 책을 조금 읽고 있지만, 사실 많은 책을 읽던 독서광이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 또렷하고 분명하며 느슨한 나의 삶을 잡아 줄 수 있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했다. 문학에 무지하고, 글은 국어말고는 배워본적이 없어 아름답고 고상한 언어에 대해 알지 못하고 짧은 문구에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10권의 책을 읽고, 20권을 읽고, 30 권을 읽고 계속된 책읽기는 나의 독서 취향을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 여전히 나는 경제서적이나 제테크 관련 도서 등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주는 책도 좋아하지만, 최근 통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았다. 대신 소설이나 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직도 나는 이런 산문집을 읽고서 어떤 문장이 정말 아름다웠다느니, 어려운 글에 숨어있는 이런 의미를 읽었다느니, 이 작가의 정서란 이런 것이라느니 등을 서술하기는 힘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지루했고, 왜 쓰는지 의미를 모르겠고,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뭘까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에 읽었던 여러사람의 책 중에 몇 안되는 느낌을 받은 책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은 작가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출판하고 인기있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쓴 책은 금세 베스트 셀러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래서인지 한 줄의 글을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장이 없고,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가 없었다. 내가 느낀 이런 생각들이 문학에 대한 나의 수준이 조금은 높아졌다는 증거가 될까.

 

좋은 시를 읽고 싶어졌다.

그 옛날 중,고등 학교 시절 읽었던 시 중에는 짧지만 얼마나 깊이감 있고 묵직한 문장 들이 많았던가. 시를 읽고 밑줄을 긋고 문제를 풀어야 했던 그 시절의 교육이 새삼 원망스럽다. 시간이 되면, 그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금 느껴봐야겠다.

 

왜 사람들이 시를 읽는지 알게된 늦은 오늘이 새삼 다행스럽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