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는 건 분명 책이었는데,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장르는 우울하고 쓸쓸하고 웃음기가 쏙 빠진 심심한 드라마이다.

영화 어땠어?? 하고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그냥, 그랬어"하고 단번에 입밖으로 나오고 마는 그런 류이다.

그래서 딱히 좋았다거나 어떠했는지 서평으로 장황하게 남길 수도 없을 그것.

나의 십대를 그리고 이십대를, 까마득한 옛날의 기록들에 가끔 섬뜩 놀라기도 하고 과거를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아마 나도 내 기억속 그 무언가들을 내려 놓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끄집어 내주기 전에는 켜켜히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마는.

일부러 꺼내려 하지 않으면 더이상 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거기까지다. 내가 이 책을 읽는동안 그 세 친구들에게 느꼈던 연민이란 게 남아 있다면.

지혜, 세미, 준모. 그 친구들에게만큼은 기분 좋은 안녕이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각자의 아픔들을 가지고 서로 성장해가는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래 그들 역시 곧 어디엔가 도착할 것이다. 계속, 살아갈 것이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