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1주기를 맞아서 작가의 중단편 6편을 엮은 책이다.

1970년에 늦게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가 40여년동안 대한민국 대표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특별히 6편을 선정하여 유고집처럼 엮어 냈다고 한다.

 

스물살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영원히 멈춰버렸다는 작가의 생애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고스란히 묻어 있는 걸 느끼곤 했었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작가가 그동안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압축해 놓은 느낌을 받았다. 지독한 감기를 앓으면서 유럽여행 이야기를 적은 뒷부분은 여행도 건강해야 즐길 수 있다라고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빨갱이 바이러스"는 수해로 도로가 끊기고 버스도 끊긴 시골 집으로 내려가면서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세 여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워주고 밥을 먹이면서 나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흥미있게 전개했으며, 세 여인이 자기만이 간직했던 비밀을 풀어 놓고 마지막으로 집 주인 여자에게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고 하지만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독백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한국전쟁시 북으로 간 삼촌이 전쟁후 깊은 밤에 집으로 찾아 왔지만 아버지가 삽으로 삼촌을 죽였다고 믿고 그 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인의 심정이 가슴에 아려 온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중년의 여인이 맞는 갱년기를 여인들의 까탈스러움과 남편자랑, 자식자랑 같은 흔히 우리가 겪고 있는 내용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언어의 마술로 표현 해 놓은 것으로 누구나 읽으면서 공감이 갈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후에 실린 세 편은 후배 작가들이 추천한 작품으로 "카메라와 워커"는 한국전쟁으로 오빠와 올케를 차례로 잃고 어린 조카를 오빠와 올케를 대신해 어머니와 함께 키우는 모습, 한국전쟁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있었던 이야기를 주제로 작가 특유의 언어로 펼쳐내고 있다. 70년대 초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던 공사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여 고생하는 조카를 보고 안쓰러워 하는 모습, 그러나 현실에 부딪쳐 도망가지 않고 그냥 버텨나가는 조카의 마음 등에서 그 시절의 우리 현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손윗동서와 전화통화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이한열 열사를 생각나게 하는 소설로 데모를 하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식물인간처럼 목숨만 부지하는 친구의 아들을 보고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워 펑펑 울어대는 모습은 정말 어머니의 모습은 한결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닮은 방들" 은 70년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일 때의 작품으로 아파트 내부가 똑같이 생긴 것을 비유해서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친정에 얹혀 살다가 아이가 국민학교 갈 무렵에 아파트로 이사해 앞집의 방 구조와 똑같이 꾸미고 음식까지도 비슷하게 하는 등 그 시대에 살아가는 모습...지금도 닮은 방들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