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텍스트로만 남은 전설, 45년간 숱한 회자·리메이크된 생명력 강한 작품의 원형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선보였던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올해 개봉했다. 6번째 <만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맡았던 김지헌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가 45년 전에 썼던 작품이 아직까지 생명력을 가진 것에 대해 정말 행복하고 멋진 작품으로 탄생해 감격스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1966년 이만희 감독이 만들었던 최초의 <만추>, 한국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이지만 원본필름소실로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사건이 전설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도 같다. 아무튼 최초의 <만추>는 현재 시나리오 원문, 포스토와 몇 장의 스틸컷들, 다수의 평론과 기억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한국시나리오걸작선이란 타이틀로 영화 한 편 시나리오를 포켓북 크기의 매우 얇은(<만추>의 경우는 불과 50여쪽에 불과하다) 책으로 만들어 펴내고 있다. 그래서 좀 작은 글씨로 종이 가득 글이 메우고 있지만 가격도 4000~5000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만추>는 커뮤니케이션북스 한국시나리오걸작선 시리즈의 열일곱번째 책이다. 1966년 <만추>의 시나리오 전문과 각 한쪽 분량의 작품해설(김형우 시나리오 작가)가 작가소개를 담았다. 총 75씬.

 

 

<만추>의 기본 설정은 매우 단순하다. 연상연하-교도소 복역 중인 여자가 잠깐의 귀휴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남자(쫓기고 있음)-의 짧은 사랑이야기, 그래서 누구나 예상가능한 전개와 결말 속에 달라지는 연출과 디테일을 비교하며 보게 된다. 연상연하라는 설정은 이만희 때부터 시작되어 계속되고 있는데, 김지헌의 시나리오를 보면 나이에 대해 별다른 설정은 없었다. 45년 전 영화 시나리오, 읽고 있노라면 대사톤이나 몇몇 씬들에서 196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디렉션이나 숏분할이라든가 몇몇 시퀀스들이 굉장히 실험적이고 세련되었다. 이것이 누벨바그의 힘인걸까.

 

  

 

영화화되면서 인물이름도 조금씩 바뀐 듯하다. 중반을 기점으로 훈과 혜림의 사이가 급진전되면서 대사 앞에 성으로 표기되던 것이 이름으로 표기되기 시작하는데 성이 다르다. 시나리오 용어를 잘 모르면 내용이 빨리 들어오지 않을 수 있어 약간만 공부하고 보면 더 좋겠지만, 모르고 봐도 찬찬히 읽고 있으면 시나리오 용어를 몰라도 줄거리 파악엔 별 문제가 없다. 오리지널 영화 <만추>를 본 적이 없기에 읽는 내내 영상을 상상해보았다. 영화를 본 시나리오 작가가 설명해주는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는 부러움과 질투심에 잠시 뾰로통해지기도 하였다.

 

 

원작은 혜림이 미혼의 제소자이고 구체적인 죄목은 밝혀지지 않는다. 혜림의 과거회상으로 시작되는 <만추>, 혜림은 특별귀휴로 어머니의 산소도 돌아볼 겸 여기저기 들리게 되는데 위조지폐범으로 쫓기던(그와중에 훈은 정말 긍정적이고 특이한 캐릭터이다) 훈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 짧은 만남 속에 본능적으로 끌려 사랑에 빠진 남녀는 헤어짐에 아쉬워하며 나중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만추>는 인물의 신상이나 사연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서로에게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그저 사흘 동안의 동행 동한 벌어지는 상황과 감정 변화 묘사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깊은 만추의 스산한 공허함 속에 짙은 여운으로 남는 결말.

 

 

김지헌 작가는 1956년 시인으로 등단하나 1958년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을 시작으로 10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 중 70여개가 영화화되었다. 프랑스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초기작부터 한국적 누벨바그의 개척자로 평가받았다. <만추>는 그 시기 작품 스타일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작으로 역시 명불허전이란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든다. 확실히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제 7, 제 8의 리메이크가 계속 나올까. 한편 밖은 봄이 다가오며 아우성치는데 가을 가득한 시나리오 속에 한참 빠져 있다 나오니 기분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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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연극영화예술상은 백상예술대상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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