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전쟁이 노동력의 획득을 위한 전쟁이었고, 중세의 전쟁이 영토의 확장을 위한 전쟁이었고, 20세기의 전쟁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야기한 전쟁이었다면, 후기 산업 자본주의가 정점에 도달한 현재의 전쟁은 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자원을 둘러싼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이데올로기의 확장과 충돌이 빚어낸 냉전 시대의 마지막 전쟁이었다면, 이라크 전쟁은 중동의 석유 자원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대표적인 전쟁이었고, 현재 지구상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의 상당 수는 과거와 같은 이념이나 종교, 인종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자원을 둘러싼 전쟁이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급격하게 더 늘어갈 것이 확실합니다.

 

과거에는 석유나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연료를 둘러싼 전쟁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희토류를 둘러싼 쟁탈전으로 변화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전쟁과 영토 분쟁은 여전히 육지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전체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과거와 현재에 육지에서 채굴하였고 앞으로 채굴 가능한 것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자원을 둘러싼 충돌은 육지를 떠나 바다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정치학과 영화학을 전공한 후 WDR, ZDF, NDR, Arte 등 독일과 유럽 굴지의 방송국들에서 다양한 과학, 문화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하고 있는 사라 치룰이 쓴 <심해 전쟁>은 그녀가 3년 여의 시간에 걸쳐 공들여 만들었던 해양과 심해저 다큐멘터리들을 토대로 하여 그것을 글로 다시 정리해 낸 것입니다.

 

 

저자는 뉴질랜드 앞바다의 심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저 금광 탐사와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태평양의 심해에 있는 망간단괴를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비롯해, 러시아의 북극해에 대한 선점 욕구,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등 현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저 자원을 둘러싼 영유권 주장과 경쟁의 현황들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립이 실제로는 독도 주위에 묻혀있는 두 나라가 향후 3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량의 메탄 하이드레이트 때문이라는 지적은 독도 문제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난 두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분기점임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여줍니다.

 

심해에는 아직까지도 그 현황과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다채로운 해양 생물들과 미생물들, 그리고 다양한 천연 자원들이 숨겨져 있으며, 이들을 둘러싼 경쟁은 급속하게 치열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양과 심해저에 대한 발굴과 탐사는 아직까지 초보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동시에 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에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석유시추선 사고와 그 사고로 유출된 원유로 인한 엄청났던 해양 오염입니다. 그리고 현재 무작정 채취하기만 하고 있는 해저를 채취와 탐사 이후에 원래의 상태로 복원해 놓는 문제도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전쟁 원인이 자원을 둘러싼 것일 정도로 육지의 자원 쟁탈전이 한계치에 도달한 상황에서, 앞으로 새로운 자원의 보고가 될 해양과 심해저의 탐사와 채취는 모든 국가들이 전력을 쏟아부울 새로운 경쟁과 분쟁의 대상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벌어졌던 무분별한 자원 약탈이 야기했던 참혹한 환경 파괴가 재현되지 않고, 해양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제 해양 관련 법령의 정비와 해양 탐사 원칙의 수립 등 사전에 필요한 요소와 절차들이 산적해 있음을 이 책을 생생하고 통찰력있게 보여줍니다.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