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어본 독자라면 분명 인물, 서사 그리고 문체에 매료되고 남았을 것이다. 특히 특유의 단조롭고 심플한 문장이 인물내면과 상황과 얽히며 툭툭 불거져 나올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 형제의 잔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수한 모습이 오버랩 되듯이 아고타의 문장도 조각나있는 한편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입체감과 짜임새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는 1,2,3부로 나뉜 내러티브가 갖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구조인 것과 또한 맞닿아 있다.
아고타의 다른 작품은 접해보진 못하였지만 '문맹'을 읽고 나자 그녀의 문장은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임을, 비극이자 도전이었다. 헝가리 태생의 아고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갔고 급기야 아이를 둘러업고 남편과 국경을 넘는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난민으로 망명하고 정착해 공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근근히 살아간다. 그러던 중에 작가로서의 열망은 식을 줄 몰랐고 결국은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대체할 프랑스어를 배운다. 그리고 그녀에게 기회가 생겨 희곡을 쓰게 되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둔다. 소설 집필을 하여 마침내 출판하는 데까지 이른다. 
마치 성공스토리 같지만 문맹에서 서술되어 있는 내용들은 모자이크 마냥 순간 순간이 있을 뿐이다. (분량도 극히 적다.) 하지만 읽고 있는 순간 알게 된다. 그녀의 처지와 심경, 미래, 지나온 시간들이 자연스레 그려지게 된다. 가령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서술한 대목을 보자면 이렇다. 

P.9~14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게으르다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핀잔을 들으면서 끝내 읽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시절. 동생에게 짖？J은 거짓말을 하며 벌을 받았던 순간. 어린 시절 한 토막이지만 그녀가 작가로서의 싹이 보였던 단편이리라. 심지어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던 순간을 스토리텔링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김영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테드에서 했었다.)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연기까지 하며 희열을 느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스위스로 망명을 하고 희곡을 쓰며 연기수업을 하는 순간으로 닿게 된다. 단순하고 짧막한 이야기가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만드는 재주는 문맹에서도 여전하다.
아무래도 문맹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녀가 모국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느꼈을 심정일 것이다. 문맹. 그 과정은 스스로 문맹이 되어 더듬더듬 단어와 발음을 익히고 연습하는 유아와 다름없었을 수모와 가까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P.53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는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프랑스어로 쓴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그녀는 슬프게 프랑스어에 능통하지 못한 면과 더불어 그보다 프랑스어 작가로서의 자책감을 갖고 있다. 문맹은 과정에서 겪은 한시적 수모가 아니라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부터 진행중인 통증이었다.
소련의 지배에 있을 때에는 모국어를 지키겠다는 피지배층의 저항의식이라도 있었지만 막상 모국을 벗어나자 자발적인 무저항에 안착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편 해피엔딩과도 같다. 떠밀리듯 모국을 등지고 떠나왔지만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자전적인 이야기까지 하므로써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동료들을 놀라게 하는 여유(?)마저 장착했다. 하지만 이 책은 완결성을 갖는 자전적 에세이가 아닌 작가로서의 다짐을 담은 성격이 짙다. 낯선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하는 그녀에게 글쓰기는 여전히 도전이자 난관이다. 자신의 미래 예견처럼 모국을 떠나 올 때조차 사전을 들고 왔던 그녀이기에, 적어를 사용하면서도 모국어를 잊지 않았었기에, 비로소 문맹이었고 그러므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P.113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위로와 연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에서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