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몇 번을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동양고전에서 얻은 세계 인식과 관계론을 다룬 1부도 좋지만 신영복 선생의 경험담이 곳곳에 녹아있는 2부를 읽는 내내 행복했다. 그동안 읽었던 신용복 교수의 책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기존에 출간된 책에서 접한 내용도 몇몇 있긴 했지만 노 교수의 혜안과 교훈이 담긴 인생이야기는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큰 스승이 많이 사라진 요즘, 신영복 교수야말로 우리 시대가 지켜야 할 보호종(?)이 아닐까. 특히 글의 문장이 평서체가 아니라 강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경어체 혹은 겸양어여서 더욱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그가 "우리의 교실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각성이면서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여행이기를 바랍니다"고 말한 교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

 책 표지에 '마지막 강의'라는 문구가 있어 덜컥했다.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랜디 포시 교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구 그대로였다. 선생은 1988년 가석방된 후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계속했다. 25년간 강의를 한 셈인데 실제로 선생은 이 강의를 마지막으로 강의를 하지 않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특강형식이라면모를까 교단에서 선생의 정식강의를 보기는 힘들 듯하다. 첫번째 챕터인 '가장 먼 여행', 책의 20쪽에는 이런 멋진 말이 등장한다.

​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의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 

 

며칠 전 나는 왼손 약지가 곪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두 방의 마취약은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씻는 것도 어렵고 무엇보다 컴퓨터 자판을 자유자재로 칠 수가 없다. 이 글도 벌써 세 시간이 넘게 작성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자판이 생각대로 쳐지지가 않아 백스페이스 바만 연신 누르고 있다.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자판에 찍힌다. 생각이 손을 따라가지 못하니 답답하고 신경질난다. 그래서 아예 모든 걸 포기하고 독수리 타법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워드로 쓰면 술술 나오던 글도 종이 위에 펜으로 쓰면 잘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으니 더욱 글이 쓰고 싶어진다. 키보드 자판과 몇 시간을 끙끙거리다 선생의 대표작이기도 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장면과 구절이 자꾸 생각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 이게 얼마나 삶에서 소중한 건지 새삼 깨달았다. 선생은 어떻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영어의 몸으로 견디었을까. 더운 여름 감옥, 동료들의 몸이 닿으면 증오심이 생긴다는 고백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는 자판을 치기가 어렵다. 독수리 타법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처음 알았다. 손가락의 귀중함 또한.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책이 두툼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소장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멋진 강의를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도 두루 갖추고 있어 마음의 양식으로 더없이 좋다. 이 책은 여름휴가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휴가를 책으로 보내주시려는 분에게 강추다. 생각을 정리하고 독서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잠시 잊고 지냈던 옛스승을 만난 기분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전에 약지 손가락이 얼른 완치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