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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가슴속에 꾹 눌러놓아 터질 듯 터지지 않고 있는 응어리가 된 한스러운 삶에 대해서.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의 이야기다. 격변기의 시대를 살았고, 경제적으로는 어려웠고, 시대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을 쉽게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그런 세대였다. 아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눌러 담아 놓은 이야기를 가진 많은 이들은 지금 그런 이야기가 다른 이들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데 더욱 절망할 것이다. 아마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피해 의식이 가득하다거나, 혹은 왜 자기주장도 못하고 그렇게 바보처럼 당하고만 살았느냐고 도리어 퉁박을 들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 누가 잘 들어주거나 알아줄 것 같지 않은 아픈 이야기를 작가는 꾹꾹 눌러 글로 옮겼다.

그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에 와 닿기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우리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이 달라진 환경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대의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가 지금 조금은 자유롭게, 당당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단편집인 <건너편 섬>에 나오는 여인네들은 모두 아픔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몸을 팔다가 미국으로 이민까지 오게 된 마리아, 미국에 와서도 가족들이 건너와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지만 그녀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버린 존재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하나밖에 없는 언니와 떨어져 언니의 마지막 말인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올 테니......'를 믿고 결혼도 하지 않고 언니만 기다리다 늙어버린 세희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언니를 만나지만 언니는 예전의 언니가 아니다. 작가가 그린 여성들은 이렇게 해소될 수 없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이들이다.

이야기는 슬프기보다 아프다.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혼란 때문에, 가부장적 구조 때문에, 제도적인 폭력 때문에 이리저리 치여버린 나약한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치여 흘러가다가 이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등장인물이 하는 말처럼 '이미 살아온 세월만큼 혼자서 되새김질을 해야 끝나는 것'일지도 모르는 삶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안고 가는 고통이 건너편 섬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으면, 혹은 이쪽 섬에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아픔을 피해 저 건너편 섬으로 도망쳤으면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꿈꾸던 건너편 섬은 결국 '죽음'이라는 모든 인간이 만나야 하는 목적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 담았지만 아픔이 그리고 슬픔이 툭툭 떨어지는 작품을 읽는 내내 내 가슴도 아팠다. 그리고 힘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이런 삶을 살았던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