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소설을 들었을 때, 시리즈 마지막이라서 첫번째와 두번째 소설보다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식상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작가의 주장이나 의도와 달리 인터넷에서 일부 독자들이 세번째 소설이 더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여준 탓도 있었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첫번째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두번째 '열녀문의 비밀' 그리고 마지막 '열하광인'까지 어느 소설 하나 처지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가 홀로 빼어나지도 않은, 셋 모두 일정한 수준에서 다듬어진 것이라 평가하고 싶다.

 시리즈의 첫번째인 '방각본 살인사건'에 대한 서평에서 내가 ' 정조는 영원히 합쳐질 수 없는 두 가지 이상, 즉 공맹지도(주자학)와 실사구시를 동시에 추구했기 때문에 개혁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평했는데, '열하광인'은 정조임금의 치세 중 마지막 단계를 배경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고 소설 속의 정조는 왕족으로서의 한계와 자신도 여전히 주자학을 신봉하는 사대부의 일원이기 때문에 '백탑파'를 멀리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뜻과 소망이 '부국강병'이나 '인내천'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려는 지도자의 철학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한계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리를 말해주는 것 같다.

 '열하광인'은 '열하일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백탑파'-정조-기존 보수세력간의 갈등과 알력을 주요 이야기거리로 하여 전개된다. '열하일기'가 당시 고문의 문체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조는 금서로 지정(국사 시간에 공부하던 정조의 '문체반정'인 것으로 사료됨...^^)하고 '백탑파'들은 그럼에도 신세계와 신문체를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밤 늦게 모여서 '열하일기'를 공부하는데, 멤버들이 하나 둘씩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열하광인' 역시 앞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잘 짜여진 역사추리소설이다. 역시 한 번 손에 들고서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계속 쏟아지고 억울하게 연쇄살인범으로 몰린 채 필사적으로 진범을 찾아내려는 이명방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시리즈 중에서 제일 소중하게 여기고 시리즈 창작 이유를 마지막 '열하광인'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았지만 솔직이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 속의 자신의 입으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명방이 작가의 분신인 것 같고...

 어찌되었든 시리즈 여섯권을 창작하느라 작가가 '열하일기'를 몇번이고 독파하고 정조시대의 문화와 방각본 소설에 대해, 야소교에 대해, 당시의 정치와 사회분위기에 대해, 왕궁과 과거 관조직들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공부하고 조사하고 연구한 흔적이 돋보였다. '열하일기'가 고문의 사상이나 문체를 벗어나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책이라면, '백탑파 시리즈'는 100년 가까이 주관성 없이 일본과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잊어버린 우리의 말과 글을 되살리기 위해 단어 하나, 명사/형용사 하나, 표현 하나를 세심하게 다듬어서 '온고지신'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독자들에게 달려가라고 외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소설이다.

 아직 '백탑파 시리즈'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과거 작가가 창작한 '불멸의 이순신'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TV에서 방영되었듯이, 이정명작가의 '바람의 화원'이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조금은 반갑다. 이제 한국도 소설이 소설 하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게임이나 교재로, 연극이나 뮤지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 같아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