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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재밌었다.

인권이라는 말, 사실 불편한 말이다. 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책, 의외로 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편견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1년간의 집필휴가를 왜 주었는지 알 것 같았고 아주 유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편견에 대한 또 다른 이해가 이 사회를 좀 더 관대하게 할 듯 하다. 그래서 내 아이가 자라고 살아야할 이 땅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란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청소년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트>로 모두 9장으로 구성되었다.

주로 영화를 통해 시대를 해석하고 각 분야의 인권문제들이 어떻게 대두되고 발전해 왔는지 그 시대적 배경까지 상세히 소개된다. 역사적 사실과 광범위한 지식들이 날실과 씨실로 엮여 이 시대를 관통한다. 말도 어렵지 않아서 이해하기도 편안했다. 인권을 대하는 마음도 글처럼 어렵지 않게 흡수되었다.

개중 이 영화는 꼭 보고 싶다. 여성과 폭력 부분에서 소개된 ‘안토니아스 라인’ 이다.

가부장이 사라진 가정, 핏줄이나 제도 대신 사랑으로 그려진 가계도.

(내가 아는)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아내이며 어머니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이 있는 집을 온 몸에 살이 쏙 빠질 정도로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나왔다. 세 번째 정도 된다. 나와서 살고 있는 동안 그녀는 좋아보였다. 그녀가 좋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필요해서 집에 갔다가 우연찮게 남편의 습격을 당했다. 그냥 뒤에서 꼬옥 안아주더라는 것이다. 그날로 그녀는 다시 그 집에서 그냥 산다. 언제 다시 집을 나올지 모른다. 가끔 그녀는 남편 흉을 보지만 왠지 이젠 편안하다. 그녀는 아닐지 몰라도 나는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좀 불편해진다. ‘안토니아스 라인’처럼 여자들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족의 탄생’처럼 핏줄이나 제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데...., 집을 나와 편안한 그녀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래도 갖고 싶다. 희망 같은 것들을.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그 집에 다시 들어간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그녀를 통해 보수적 탈을 쓴 나를 만났지만 희망을 품고 싶다. ‘안토니아스 라인’처럼.

그런 희망들이 이 책의 곳곳에 있다. 우리는 문제를 알고 있다. 아니, 문제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나만 괜찮으면 되고 내 자식만 잘되면 되고 내 가족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 남이 안 괜찮을 때 나만 괜찮을 수 없고 남의 가족이 안전하지 않을 때 내 가족만 안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딸에게 주는 가르침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는 것.

사실 <날아라 펭귄>의 ‘송팀장’과 ‘승윤엄마’의 모순을 우리는 가지고 산다. 송팀장은 직장에서는 ‘아이들을 삭막하게 키워가지고 다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진보적 운동가이지만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고 집에서는 영어만하라고 말하는 극성엄마였다. 마음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과연 얼마만큼 자신의 주관대로 아이들을 ‘네 멋대로 살라’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나라 우리교육 나의 문제라는 거 너무나 잘 안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직도 출발점에 서서 여기가 시작이네 아니네를 두고 옥식각신하며 ‘안 보여주는 방법’만을 찾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변할 마음의 준비’부터 갖추어야 한다.

시대를 이해하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영화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글을 쓰면서 저의 삶을 반성해보지만, 제 기반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니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가능성은 없지요. 그러니 독자분들도 이 책의 그런 한계를 잘 인식하고 문제점을 찾아가면서 읽어나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좀 씁쓸해진 건 사실이다. 많은 위로와 힘을 얻고 싶었던 감정이 흩어지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 책이 편안한 건 어쩌면 그가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볼 줄 아는 혜안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만 고민하지 몸으로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 그 한계점을 함께 느끼면서도

“인권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그 자체로도 가치있는 실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파는 자신의 아이를 떳떳하게 사교육현장으로 보내고 좌파는 부끄러워하며 보낸다.” 는 우리의 현실 앞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많은 문제와 해결책들이 이 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