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트릭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시작은 역시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부와 어린 아들이 총에 맞아 죽었고 갓난아기만 살아남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은 가장인 '루크'가 아내인 '캐런'과 아들 '빌리'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되려고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소설이 '현재' 발생한 루크 일가 살인사건과 '과거'에 발생한 엘리 디컨 살인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결국 독자들은 현재의 살인사건과 과거의 살인사건의 비밀을 동시에 파헤쳐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미스터리의 묘미는 당연히 범인 찾기. 나는 여기서 장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게 될 독자들 중 두 사건의 진범을 정확하게 맞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먼저 '드라이'라는 제목, 최악의 가뭄이라는 설정. 독자는 슬슬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배경은 농장이고, 가뭄이 극심해 주민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다. 루크 일가 살인사건의 원인도 이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작가가 초반에 던지는 소스이기도 하고 만약 이게 진짜 답이라고 한다면 너무 시시하고 재미없게 되겠지만 일단 의심의 리스트에 이것도 올려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찾아오는 의심의 화살은 남자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크'에게로 향한다. 포크는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지만 그는 고향이 불편하고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이다. 마을 사람들의 포크를 향한 시선도 굉장히 따갑다. 이 묘한 전개에 독자들은 여기서 또 한 번 의심의 불을 켜기 시작할 것이다. 좀 진부하긴 하겠지만 혹시 남자 주인공이 범인일 수도 있는 걸까. 이때의 범인은 '현재'의 사건이든 '과거'의 사건이든 둘 모두에게 해당된다. 현재와 과거를 서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진행되는 액자식 소설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인물이 포크에게 맞춰져있는 관계로 남자 주인공을 향한 의심은 그리 커질 수 없는 설정이지만 과연 의심의 리스트에서 그를 일찌감치 제거해버릴 독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 특히 미스터리 애독자라면 마지막까지 단 한 명의 인물에게서도 그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버릇과도 같기 때문에 아마 포크도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의심을 받아야 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범인을 찾아야 하고, 현재와 과거 두 사건에 유사성은 있는 것인지 범인은 같은 것인지 추리해봐야 하고, 전개가 진행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한 명 한 명 의심해봐야 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았던 소설이었던 것 같다. 앞서 이 소설에는 트릭이 많다고 언급했는데, 더 이상 자세히는 말할 수 없으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현재든 과거든 살인사건의 '의심리스트'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 독자들 나름대로 의심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의심리스트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인물들 중, 이 소설의 진범이 있을까. 과연 정확하게 진범을 맞출 독자들이 존재할까. 한 가지 진범에 대한 힌트를 주자면,

그 사람도 의심해야 할 거야

이 정도? 그런데 아쉬운 점은 범인을 못 맞추는 게 당연할 정도로 작가가 너무 진범과 관련한 힌트를 아꼈다는 것이다. 아끼고 아꼈다가 마지막에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느낌. 그래서 범인을 알았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좀 허무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해서 A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B였더라, 가 아니라 A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A가 범인이었더라. 물론 이 소설이 '살인'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나 철학적인 부분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에 따라서 결말을 받아들이는 감상은 다양할 것이다. 내용에 대한 감상은 그대로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끝내야겠고.

소설의 전개는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이 점은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전개에 약간 지루함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음 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든가, '이 소설의 끝이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라는 간절함이 덜했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매력적인 히가시노 게이고나 댄 브라운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감상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몰입도 문제로 섣불리 이 작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이 작가의 데뷔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가의 잠재성은 진짜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첫 소설로 이렇게나 완성도 있는 창작물을 빚어냈으니 말이다. 만약 제인 하퍼라는 작가가 두 번째 소설을 내놓는다? 나는 당연히 읽어보고 싶을 것이고 읽어볼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독자들을 저울질하는 '밀당실력'만 더 높여주면 나의 취향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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