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읽었던 위인전 중에서 헬렌켈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소녀가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했다는 내용을 보면서 건강한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구나, 느꼈었다.

이 책은 미국의 전기작가 도로시 허먼이 쓴 <헬렌켈러>의 일대기다. 책표지에는 청소년권장도서,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추천도서,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음악인 전제덕 '내 인생의 책', 서울 YWCA 청소년 추천도서라고 되어있다. 원래 남들이 추천하는 책을 잘 보는 편이 아닌데 헬렌켈러의 생애를 다룬 청소년 권장도서라서 관심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헬렌켈러는 극히 일부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헬렌켈러에 관한 위인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인기스타의 숨겨진 과거를 보는 느낌이랄까. 대중은 스타를 바라볼 때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다보니 스타는 원래의 자신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인물로 살 수밖에 없다.

헬렌켈러가 그 시대의 유명인이 된 것은 스타탄생과 비슷하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가지고도 대학교육까지 받을 정도로 뛰어난 지성을 지녔다는 점이 세간의 관심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권력을 지닌 두 남자와 명예욕을 지닌 한 여자때문이었다. 퍼킨스 학교 교장 마이클 애너그노스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그리고 앤 설리번. 그들은 헬렌을 통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웠다. "고결한 시각- 청각 장애인 천재 헬렌켈러"  이렇게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헬렌을 평생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었을까. 헬렌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위인으로 추앙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천재도, 괴물도, 바보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교육받을 수 있는 머리와 재주를 익힐 수 있는 손이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야망을 이룰 권리가 있다. 그들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돕는 것이 사람들의 의무이다. -헬렌 켈러, 1907년" 

헬렌 켈러는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536p)

빛과 소리가 없는 세상은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각, 청각 이외의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이 외로운 것은 어둠과 침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헬렌은 말한다.

"빛이 없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무지와 외면의 어둠일 뿐이다. 우리는 다르다. 볼 수 없는 사람들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감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감각을 뛰어넘는 지혜를 찾기 위해 펼치는 상상력과 용기가 다를 뿐이다."(546p)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헬렌켈러와 같이 세계적인 위인도 감춰진 삶 속에는 온갖 어려움과 고통이 존재했다. 헬렌의 곁을 지켜며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 앤의 이중적인 면은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 원래의 튀어나온 눈이 혐오스럽게 보인다는 이유로 제거하고 인공눈을 끼어넣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아름답게 포장해야만 봐주는 세상, 다른 것은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헬렌은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헬렌 켈러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정말 끝까지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다. 헬렌의 삶, 그 진실을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