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 조명한 갈등의 계보를 보면 부모와 자식의 수직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줄리엇 미첼이 ‘Siblings: Sex and violence’를 낸 것이 지난 2003년이다. 이 책은 지난 해 ‘동기간: 성과 폭력’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 형제자매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갈등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난 해 일본에서 출간된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형제가 불편할까?’는 수평적 갈등의 최신 흐름을 반영한 책이다. 저자는 정신의학과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임상의로 활약하며 강의도 하는 인물이다.


저자가 말했듯 인류의 절반은 동생을 죽인 카인의 후손이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기원한 정의(定義)인데 이런 갈등의 예는 야곱의 아들인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의 기저에는 부모의 편애(偏愛)가 있다. 저자는 콤플렉스란 개념을 제시한다. 열등감이기보다 응어리진,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섞인 복합 감정이라 해야 할 이 개념은 부모자식간은 물론 형제간 갈등을 해명하는 열쇠어이다.


부모는 치우침이 없이 자식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문제의 기원은 가족에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많은 유무명의 인물들을 거론하며 잘못된 관계가 낳은 구체적 사례들을 적시한다. “형제자매간에 벌어지는 폭력의 근간에는 부모의 관심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나 질투가 있다.”(34 페이지) 부차적일 수 있겠지만 형제자매간 터울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형제자매간 터울은 수렵채취 대 농경의 관계를 해명할 때 중요하게 등장한다.


부부(아이에게는 부모) 사이나 조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부부 사이가 나쁘거나 조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부모는 자연스레 아이들을 차별하게 된다.(48 페이지) 부부의 원만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형제자매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쟁하며 살아가는 라이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기애란 개념을 제시한다. 유치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어른일지 몰라도 행동하는 방식은 2 ~ 3세의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이런 부모는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충분한 자기애를 가진 부모라야 아이를 편향됨이 없이 양육할 수 있다. 저자가 의식하고 논의를 펼치는 것인지 모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떤 사안이 옳은지 여부보다 자기에게 맞는지, 좋은지 등에 기준을 둔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의 진단은 익숙하게 들린다. 반면 자기애가 강한 부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상상)을 아이에게 강요한다.


저자는 아버지가 강요한 성공지향적 가치관을 잘 따랐던 힐러리 클린턴과 그러지 못했던 두 남동생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린 명암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오스카 와일드보다 형인 윌리엄을 더 사랑하다가 오스카가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급격히 관심을 그에게 돌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형제를 갈라지게 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지 못하면 아이는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성격으로 자라난다. 애착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유대감이다.


부모의 애착은 모든 아이들에게 한결 같지 않다. 그것이 문제이다. 몇 해 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알프레드 아들러란 정신의학자가 있다. 그는 태어난 순서에 따른 성격 차이를 말했다. 첫째는 낙천적이고 친절한 대인배이다. 둘째는 권위에 저항하는 현실적인 야심가와 안정을 추구하는 근면가, 자립심 높은 성공가로 나뉜다. 막내는 사회성을 타고난 헌신가이다. 외동은 무한한 사랑을 먹고 자라는 이상가이다.


첫 아이는 부모에게 특별한 존재, 귀중한 존재로 여겨진다. 부모는 아직 육아 경험이 없기에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첫째를 보살핀다. 아들러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 비율이 첫째에게서 높은 것을 동생에게 왕좌를 빼앗긴 마음의 상처가 작용한 결과로 해석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아들러가 둘째 중 대표적 인물들이다. 열등감, 우월함을 향한 노력 등을 개념화한 아들러의 사연에는 둘째로 태어나 맺은 형제와의 관계가 자리한다. 아들러는 체험을 통해 유약함이나 열등함은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힘을 낳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형에게 시달림을 당한 그였다.


저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둘째 중 자립심 높은 성공가의 유형으로 꼽는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현실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형제자매간 갈등은 극복을 위한 노력을 낳지만 문제는 지나친 갈등의 경우일 것이다. 일본의 유명 배우 다케다 데츠야는 막내로 태어났는데 자신을 키운 것은 형에 대한 콤플렉스였다고 말했다. 외동은 무한한 사랑을 먹고 자란 이상가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태아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말을 한다. 불교적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탄생은 부모의 현실적 조건과 태아 즉 중음신(中陰身)의 의지적 조건이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결과이다. 이를 보며 인간 관계의 기이한 인연을 생각했는데 저자의 책을 통해서는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부분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동의 대표적 인물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타인을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침입자로 규정했다.


한나 아렌트는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자매가 생긴 사례자이다. 저자는 한나가 하이데거에게 보인 마음에는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일란성인가 이란성인가로 갈리는 쌍둥이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것은 쌍둥이는 따로 자라면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성격이 되지만 함께 성장하면 대조적인 성격이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형제자매의 존재는 때로 우리의 마음 속을 지배한다. 특히 상대가 이성(異性)일 경우 성적인 동경이 더해져 그 지배력이 더 커진다.


저자는 말한다, 무의식의 세계에는 금기가 없다고. 폴과 카미유 클로델 남매가 유명하다.(카미유가 누나이고 폴이 네 살 아래 동생이다.) 폴은 아름답고 재능이 풍부한 누나를 숭배했다. 카미유는 로댕의 조수였다가 연인이 된다. 저자는 형제자매간의 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 첫째 다른 형제자매에 비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 둘째 마음 속에 이상적인 존재로 각인된 형제자매에게 얽매이기 때문, 셋째 자신이 애착을 쏟아온 존재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마음 속의 상처를 마주하고 상대와 바람직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갈등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관계 회복이다. 타이밍이 맞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먼저 존중하고 먼저 이해할 것을 당부한다. 반목했던 형제자매의 화해 사례로 저자는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 작가를 설명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형 미하일의 사연도 파란만장하다. 놓칠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은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형제의 사례는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노후 대비를 언급하며 자금(資金)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형제자매는 삶의 끝까지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해 더 알아야겠는데 지나치게 병리적인 면에 초점을 두는 점을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관없이 희망하는 것을 말하는 테리 이글턴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긍정적인 지향점이 돋보이는 넉넉한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다.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