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케의 신경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빈틈없는 사고력과 예민한 감수성에 대해 지불해야 할 세금이다. 고상한 교육을 받은 대상으로서의 고통이다. 그것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탓에 받아야 하는 불문의 형벌이다. - p.16-17

 

"나는 소위 사회생활의 경험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네. 고통스러울 뿐이지 않나?"  - p.26

 

"먹고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방편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갈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내지는 순서가 다른 것의 간섭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 p.107-18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고, 그의 시니컬한 유머감각에 반해서 그의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다음은 [한눈팔기]를 읽을 생각이다. 이 책에도 그의 유머가 나부끼는 커튼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바깥 풍경처럼 나오긴 하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100 여년 전에 쓰인 책이 지금 읽어도 재미있고,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게 참 놀랍다.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서른살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형의 도움으로 독서와 꽃가꾸기로 세월을 보내며 살아가는 고등유민(고학력의 한량)이다. 성실과 열의를 강조하지만 사실은 부도덕한 방법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속으론 비웃지만 겉으론 큰 충돌을 피해가며 산다.

 

어느날 삼년 전에 결혼과 함께 도쿄를 떠났던 절친 히라오카가 부인 미치요와 함께 돌아오는데 그는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치요는 심장이 약해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잃었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연민을 느낀다. 처음에는 그냥 연민인 줄만 알았다. 그가 왜 그렇게 미치요의 일에 신경을 쓰는지 나중에야 밝혀진다.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위해 돈을 빌리러간 형수에게서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도 돈이 없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는 말을 듣지만 그래도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선택한 일을 책임지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불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가족을 등지고, 안락한 생활을 등지고, 원래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새로운 삶에 도전해야할 만큼 가치가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치관에 따라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양의 가치를 무조건 따르는 일본인들과 사회의 통념에 자신의 가치관을 맞추어가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오직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과감하게 미래를 선택한 다이스케의 주체성을 높이 사야할까?

 

책 겉표지의 우산 쓴 여자사진,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 너무 궁금하다. 뒷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뒷모습으로 보이고, 앞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앞모습으로 보인다.

나츠메소세키, 근대, 그후, 민음사, 세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