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은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놓쳐버려서 그렇다면 책으로라도 읽자 싶어 구매한 책입니다.

자신이 유명 작가가 되는 것을 뒷바라지한 부인과 데면해지고 바람까지 피우던 남자가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사망한 부인의 진심을 깨닫고 늦게나마 안녕을 고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부인의 죽음에도 슬픔을 연기하고 불륜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남편 사치오의 모습에 욱하기도 하고, 분명 그의 불륜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별말 하지 않는 부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 도대체 이 부부는 어떻게 같이 산 걸까? 싶은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초반에 읽을 땐 사치오를 욕하면서도 사치오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더라구요. 당연한 일이겠지요. 부인은 이미 죽었고 그 뒷 흔적을 쫓아 가는 거니까요. 그러나 그러했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대사들, 슬퍼하는 사치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니!

그런 사치오의 앞에 부인의 친구의 남편 요이치와 두 명의 아이들이 나타나고 그들과 조금씩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몰랐던 부인의 모습도 알게되고 그 속에 감춰진 사랑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도 얼마나 오래 걸렸는 지요. 참 나쁜 남자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에 스스로를 몰아세운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는데요. 그런 점을 부인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발자국 뒤에서 기다려 준 것이 아닌가, 그러나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 울타리를 깨고 나와 하나, 둘, 정리를 시작하는 사치오의 남은 삶은 어떨지 궁금해지더군요. 담담한 문체인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치오의 비틀어진 속내나 죽음으로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 부인이 요이치를 통해 슬며시 드러나면서 묵직한 감정을 선사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사치오의 심리 변화가 섬세하게 드러나 사치오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더군요.

사실 부인의 죽음 외에는 크게 특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조금 긴장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미 다 잃어버리고 난 뒤의 묘한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유모 노릇을 자퍼한 사치오의 모습이 평온한 일상처럼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절묘하게 널뛰더군요. 시점이 1인칭으로 사치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시각에서 부인의 죽음 이후의 사치오에 대한 느낌이 보여지는 데,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지 궁금하기까지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평범하고, 겹겹히 싸안은 껍질을 깨트린 사치오의 변화가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치오의 변화를 통해서 내 삶을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물론 그처럼 살지는 않았지만 매순간 변명만 늘여놓았던 과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제153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2016년 서점대상 4위에 오른 작품답게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본인이 직접 제작한 영화는 과연 어떻게 다가올지 매우 궁금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