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를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집에 세트로 6권이 모두 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동명 영화도 참 재밌게 봤고 엑스박스360으로 발매된 게임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이 만화의 작가이기도 한 브라이언 리 오말리(Bryan Lee O'Malley)가 자신의 트위터에 업로드한 한국판 스콧 필그림 단행본 사진을 보고 당시 재밌게 읽었던 이 만화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만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스토리가 참 예사롭지가 않다. 주인공 스콧 필그림이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 라모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전남친 일곱 명을 차례로 물리쳐야 한다는 게 주 내용.

그냥 대충 읽는다면 레트로 게임을 패러디한 단순 청춘 소설이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이 만화가 여러모로 청춘들의 보편적 연애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연애가 한창일 때 우리는 과거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말은 한다. 그런데 솔직히 하루하루 애인에게 비치는 전남(여)친의 그림자를 쉬이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그림이 라모나의 전남친 일곱 명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레벨업을 해 나가는 모습은 어쩌면 연애 과정에서 상대방의 과거를 극복해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본다면 스콧 필그림은 단순 오락물이 아닌, 청춘의 보편적 사랑을 표현한 의미 있는 만화인 셈이다. 현지에서는 오말리의 차기작들도 이미 나온 모양인데 국내에는 소식이 없는 게 아쉽다. 오랜만에 정주행이나 한번 해봐야겠다.

★★★★, 캐나다, 만화, 오락, 브라이언리오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