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 아내가 쓰러졌다. 단순 교통사고도 수술로 해결될 수 있는 질환도 아니었다. 사지가 마비되어 제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청천벽력의 상태, 누군가 한 사람이 꼬박 하루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끝도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삶의 끝자락에 선 한 남편이 있다.

 

6년 간 하루 세 시간 이상 아내와 떨어져 본 적 없는 일명 세 시간 남편이다. 지금까지 아내의 곁을 떨어져본 건 어머니의 장례식과 단 한 번의 라디오 출연이 전부이다. 그는 아내의 힘든 일상을 함께 버텨낸 또 다른 환자이며 세 아이의 아빠였다. 가장의 이름이 아닌 조건없는 시한부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환우를 돌보는 간병의 세월로 그는 몹시 야위었지만 이 세상 모든 고통과 마주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하는 감동의 인물이다. 아니, 아프니까 사랑이라고 이 땅 위 무수한 사랑을 떠드는 많은 이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전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일이면 만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내의 뺨을 만져 보고, 아픈 다리를 무 같다고
놀리면서도 어루만져 본다. 그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혹은 생명이든.

그만둘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만둘 수 없으니 사랑이다.
힘들고 미워서 돌아섰다가도 등 뒤로 아픈 비수가 날아와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음.

그래서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불완전한 생물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이다.

-김재식 지음,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중에서-

 

 

사랑을 운명의 장난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그래서 운명의 장난 앞에 고개숙인 수많은 사랑을 본다. 사랑의 선서와도 같은 결혼식을 뒤로 하고 남남이 되어가는 많은 이들을, 성격 차이로 재산 문제로 양육 문제로 상대를 비방하고 상처를 내는 비일비재한 상황을 우린 드라마 보듯 쉽게 마주한다. 

 

그리고 말한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식은 거라고, 이 운명 같은 사랑의 굴레를 몸으로 겪은 저자는 말한다. 그만둘 수 없으니 사랑이라고. 그만둘 수 없으니 내가 지켜내고 보듬어 안는 것일 뿐이라고, 이 책은 단순한 간병일기가 아니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족의 힘으로 지켜내는 감동 실화를 넘어선 무엇이다.

 

그러니 그대 쉽게 포기하고 쓰러지지 말자. 아프니까 사랑이다. 힘들면 관둘 수 없는 게 사랑이니, 그 운명같은 마음을 영원히 잊지 말자. 우리에겐 고결한 사랑을 지켜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여전히 아프고 어쩌면 영원히 스스로의 힘으로 걸을 수 없을지라도 남편의 사랑을 기억하는 아내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난 그 사랑이 부럽고 읽는 내내 아팠다. 지금 내앞에 거울처럼 떠오르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어제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